언론인에서 문인화가로 시인으로, 도운수 전 <경남신문> 논설위원

산청시대 2022-07-25 (월) 23:58 1년전 1755

“찻잔 곁에 두고 문인화 그리는 시간은 행복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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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운수(77) 전 <경남신문> 논설위원이 문인화가로 이름을 떨친 데 이어 시인으로 변신했다.
도 전 논설위원은 지난 3월 <시, 문인화를 꽃피우리>라는 제목의 시집을 발간했다.
시집은 구성부터가 독특하다. 시(詩)와 서(書), 화(畵)를 한데 묶은 최초의 문인화 화제용 시집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시집에는 Ⅰ시, 문인화를 꽃피우리, Ⅱ접시꽃 피는 뜻은, Ⅲ동백꽃 사랑, Ⅳ산청 예찬, Ⅴ의기 월이 단심가, Ⅵ만추의 거리 등 6장으로 나눠 자작시 55편을 수록했다. 이 가운데 35편은 사군자를 비롯한 문인화가 소주제이고, 20편은 자연과 고향 정서를 그렸다.
이광석 원로시인은 “작가의 시 정신 속에는 평생 그 자신이 품고 살아온 ‘지리산’이 있다는 것은 매우 외경스러운 일이다. 자연과 더불어 소박 안온한 시 농사를 지어온 그의 작품 행간마다 자연과의 교감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은 값지고 소중한 좋은 인연이 아닌가 싶다”고 썼다.
도운수 전 논설위원은 신안면 중촌리 창안마을에서 태어나 도산초등학교(10회)와 단성중학교(7회), 진주농림고를 나왔으며 진주산업대와 창원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80년 <경남일보>에 입사한 그는 언론통폐합이 되면서 <경남신문>으로 옮겼으며, 편집부국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창원미술협회와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경남미술대전 특선 2회와 성산미술대전 특선 3회 등 각종 미술대전에서 10여회 입선했다.

 

“연로하신 어머니 뵐 겸 고향 찾을 때
느낀 사계절 변화에 절로 마음 설렜다.
이 설렘은 시·문인화 소재로 충분했다.”

 

-화가와 시인으로 변신한 이유는.
“신문사를 퇴직하고 차(茶) 예절과 문인화 그림을 배우며 오늘에 이르렀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에 대해서도 둔감했다. 자연히 다도 동호회에 나가 우정을 나누고 예전부터 해보고 싶던 문인화 공부를 권유받아 지금껏 하고 있다. 예순이 넘어 시작된 생활이 나의 인생 후반기다. 지금 나는 찻잔을 옆에 두고 문인화를 그리는 시간만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는다.”

-이번 시집 발간의 배경을 소개하신다면.
“시를 구성하고 작성할 때마다 유년 시절과 사회생활이 자양분이라 생각했다. 지리산 정기와 맑은 경호강이 흐르는 산청에서 태어나 고향의 전원에 묻혀 살았다. 촉석루와 남강으로 상징되는 진주는 내가 고교와 대학에서 공부한 곳이다. 재학 중 육군에 입대해 전역 일 년을 앞두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경남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매일 기사를 쓰는 편이었다. 이러 한 사회생활이 훗날 나의 시 작성에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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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소재가 있었는지.
“주로 꽃과 자연, 고향의 정서를 글감으로 삼았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뵐 겸 고향을 찾을 때마다 느낀 사계절 변화에 절로 마음이 설렜다. 이 설렘은 시와 문인화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봄엔 초록 들판이 바람을 타고, 여름이면 무논으로 출렁거렸다. 어느새 수확의 계절 가을이 풍성하고, 하얀 서리가 내리는 겨울은 무욕의 경지였다.”
-언론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있나.
“언론사에 지망하게 된 무렵인 70년대 말~80년대 초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격변기였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당시 지역사회에 무엇인가 도움이 될 일을 해야겠다는 나름 큰 포부를 가졌고, 미약하지만 그런 열정을 담을 수 있는 곳이 언론사라고 생각해서 언론인을 큰 짐을 지게 됐다.”

-기자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은.
“89년 한국기자협회 경남지부장 당시 경남 도내 언론사 기자들을 인솔해 독립기념관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를 돌아보고 포항제철을 시찰했다. 당시 기자단 일행은 주말인 토요일 오후에 출발해 동해안 최북단을 거쳐 일요일 밤늦게 귀가하기까지 강행군했다. 독립운동의 희생정신과 안보의 중요성을 깊이 새기고, 포항제철을 시찰하며 미래의 나라 발전을 가늠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가져온 좌우명이 있으신지.
“‘겸손이 미덕이다’는 말을 새기며 살아간다. 겸손에 대한 많은 글이 있다. 그중에도 ‘말은 신중해야 하고 행동은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향 발전에 대해 조언을 하신다면.
“가끔 고향을 갈 때마다 느끼지만 사회 간접시설과 치수 사업, 관광인프라 등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리산과 경호강으로 상징되는 고향 산청은 그야말로 관광자원의 보고다. 다만 산업화와 개발이란 이유로 자칫 훌륭한 자연이 무분별하게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생을 시 쓰기와 문인화 공부에 전념할 것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은퇴 후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이에게 나의 노년 활동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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