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松原이 만난 산청인(24) 전형적인 시골 선비 문병국 신등면지 편찬위원장
산청시대
2023-11-01 (수) 13:03
29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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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군자”
한평생을 농촌 계몽운동과 유림계에서 활동한 시골 선비가 있으니 남정南井 문병국文炳國(78) 신등면지 편찬위원장이다. 그는 해방이 되던 이듬해 황매산 자락 내당, 지금의 신등면 물산마을 선비가에서 5남 1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유림활동을 하셨던 선친의 성화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5세 때 중재 김황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던 중, 21세 때 스승께서 총애하시던 종손녀와 혼인했다. 젊은 한때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건설업을 경영하다가 부친의 병환으로 2002년에 귀향해 마을 새마을 지도자를 십여 년 하며 쌓은 경험으로 신등면 새마을 지도자 회장을 거쳐, 산청군 새마을 협의회장을 역임했다. 귀향 후 배움을 이어가고자 단성면 강누리 신안정사에서 남주 이기상, 수헌 정태수 선생의 문하에서 20여년을 한문 경전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성실함은 마을 이장과 산청군 새마을 협의회장을 역임하며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과 자치단체로부터 받은 감사패, 30여 개와 군수 표창 등 다수의 표창장이 증명하고 있다. 이후 단성향교에 출입하면서 유림의 전통과 예절을 익히며 성현의 정신을 본받고자 단성향교 장의, 성균관유도회 단성지부 부회장과 여러 서원과 재실에서 원임을 맡아 활동 중이다.
“‘온고이지신’ 옛것도 지키며 새것을 익혀도 좋지 않을까 한다.
유림은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로 어른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한여름 볕의 그늘이 되어,
힘들고 고달픈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선구자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
-조상 위선 사업에 정성을 다한다는데. “합천군 대병면에 있는 송호서원은 저의 25대조 휘 문극겸을 모신 서원이다. 그는 고려시대에 무신난으로 혼란한 시기에 문신의 절개를 굽히지 않았던 고려 문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 조선시대 경남 합천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셨던 옥동 문익성은 저의 15대조이며, 진주 금산 관방마을의 묘성재는 13대조이신 성강 문활 선조를 추모하는 재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본인의 7대 조부이신 문사욱의 재실인 추원제가 물산마을 입구에 있는데 훌륭한 선조님의 재실을 돌보며 수호 관리하는데 정성을 다하고 있다.”
-공직을 수행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은. “산청군 새마을 지도자협의회장을 역임할 당시 산청군에서는 한방약초축제가 무르익던 시절 있었다. 지자체로부터 소망 등 달기와 축제장 내에 식음료 코너 등을 위탁받아 각 읍면의 회장들을 하나로 모으고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등 새롭게 도약하고 협력하는 단체로 탈바꿈했던 것이 보람이다.”
-신등면지 발간을 맡으셨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면지 편찬위원장을 맡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이웃 단성현과 달리, 고읍(古邑) 신등(新燈)은 기록이 없어 안타깝다. 과거를 기록하고 오늘의 삶을 보태어 후대에 전해야 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후세 사람들은 우리가 정리한 면지를 반추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가꾸고 교훈으로 삼을 것이다. 이런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애로사항은 없으신지. “멀리 적촌현(赤村縣)에서부터 시작해 현재의 신등면까지, 산재해 있는 기록을 취합하고 부족한 부분을 연구 보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망망대해에 나침판도 없이 떠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군의원과 면장은 물론 마을의 어른들이 자문위원을 맡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고 마을의 모든 이장들이 기꺼이 당연직 위원을 맡아 협조해 줌으로써 희망의 실마리를 찾았다. 현재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부위원장, 감사, 재정위원장, 인물선정위원장, 편집국장, 사무국장, 기획국장을 맡아 각기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어 머지않아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면민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방대한 자료를 수집 편집하는 과정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고 혹시 누락되거나 미흡한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최선을 다할 것이나 혹시 부족한 부분은 다음 세대가 보완할 것이다. 면민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기록하고자 하는 면지는, 문중이나 개개인의 치적도 중요하지만 신등면의 역사, 역사적 유적이나 유물에 관한 기록에 더 비중을 둘 것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개인의 명예나 영달에 치중하기보다 신등면과 산청군, 나아가 국가 발전을 위해 힘쓰고 희생하신 분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평소 강조하는 유교 경전 구절은. “<논어> 학이편에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면 역시 기쁘지 않겠는가?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와 준다면 역시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겠는가’라 하였다. ‘배움이 주는 깨달음이 으뜸이다’란 이 말은 아주 평범한 문장 같지만, 이 문장과 경쟁할 만한 다른 문장이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본인은 아직 배움이 주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저 아는 척 배운 척 할 뿐 그래서 항상 이 문장을 시도 때도 없이 익히고 있다.”
-군민(유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본인도 이제 80을 바라보는 노인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젊은이들을 보면 생기 넘치는 모습들이 생동감 있어 좋아 보인다. 요즘 들어 내가 20대일 때는, 30대일 때는, 50대일 때는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본인도 한때는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저러나 싶고 젊은이들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은 우리 때 보다 훨씬 대단한 성과들을 내는 일들이 많다. 우리 때야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세계인과 경쟁하며 살고 있다. 그 속에서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는데 자랑스럽기도 하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옛것도 지키며 새것을 익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해본다. 본인도 유림활동을 하지만 유림은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어른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한여름 볕의 그늘이 되어, 힘들고 고달픈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선구자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끝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삼사일언(三思一言) 삼사일행(三思一行)’이란 말이 있는데, 공자님께서 천하를 주유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강조하신 말씀이다. 한마디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행동하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하라.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기 힘들다. 라는 말인데 매사에 신중을 기하라는 말이다. 개에 물린 사람은 반나절 만에 상처를 치료받고 돌아갔고, 뱀에 물린 사람은 3일 만에 상처 치료를 끝내고 갔다. 그러나 말(言)에 물린 사람은 아직도 입원 치료 중이다. 이는 말의 상처는 오래간다는 말로서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부친의 뜻을 받들어 학교 교육보다 한평생을 한학을 수학하고, 유학을 탐구하며 살아온 유자(儒者), 그러면서 열악했던 농촌의 선구자로서 마을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로서 헌신한 그의 삶은 오늘날 향교와 서원의 지도자로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면지 편찬위원장을 맡아 그 어려움을 솔선 극복하고 동분서주하며 노력 봉사하는 그를 보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꼭 필요한 인물임을 느낀다.
대담 / 심동섭 진주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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