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松原이 만난 산청인(35) 송죽松竹을 닮은 선비 권병국 단성향교 총무·수석장의

산청시대 2024-04-11 (목) 14:01 1개월전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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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국權炳局(67) 유림은 시류에 흔들림이 없고, 의(義)를 중시하며 정도(正道)로 일관하니 지역과 유교계의 신망이 매우 두텁다고 한다.
그는 소남초등학교(16회)와 단성중학교(18회)를 나와 창신대학교에서 공학사, 한국방송통신대에서 농학사를 취득했으며, 경상남도 농업마이스트대학 원예과를 나와 경남과학기술대학 최고 영농자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학구파다.
1976년 서울 초단파전신전화건설국에 들어간 뒤 2012년 말까지 한국통신에 36년간 재직하며 과장으로 퇴직한 정통 KT맨이다.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와 서부경남 공공의료확충 공론화 도민참여단, 도민정책소통단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단성면 주민자치회 사무국장, 바르게살기운동 단성면 위원장, 안동권씨 산청군 청장년회장, 단성면 농촌협약사업 주민위원을 맡고 있다.
또 2018년부터 현재까지 단성향교 총무·수석장의를 맡으면서 성균관으로부터 인성교육 강사로 위촉되어 중·고등학생의 올바른 인성 함양을 위해 열성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정보통신부 장관상과 KT회장 감사패, 소남초등학교 총동창회와 관정마을 주민으로부터 감사패, 단성면 최우수마을 이장상, 대한적십자(회비모금 우수) 표창, 그리고 2020년에는 농가 소득증대와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한 공로로 경상남도지사로부터 표창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필자의 인터뷰 요청에 아무 할 말이 없다며 겸손해하며 한사코 거절하는 것을 어렵게 설득하여 대담을 진행하였다.

-가문에 대한 소개를 듣고 싶다.
“일찍이 문소聞韶 김황金榥 선생은 경강정사 기문에 이르기를 ‘입석의 권 씨는 단성에서 일찍부터 드러난 문벌이다. 그 유명한 선조 안분당安分堂 선생 휘諱 규逵는 퇴계, 남명 두 선생과 종유하였다. 일찍부터 지위가 높고 귀하게 되는 것을 사절하고 물러나 학행을 닦았는데, 문산서원에서 향사를 받들고 있다. 대저 안분당 선생의 적덕(積德)과 어짊(爲仁)에다 후세 자손들이 그 유범(遺範)을 공경히 지키고, 하늘이 선류(善類)를 내림에 다함이 없으니, 참으로 그 유래에 근본이 있고 인도함에 법도가 있음을 징험(徵驗)하겠다. 화란(禍亂)이 뜻밖에 일어나는 것은 곧 하늘이 우리 사람에게 경계를 내리는 것이다. 한번 난리를 겪음에 더욱 분발하여 찬연한 재사(齋舍)가 우뚝 솟았으니, 이에 신령의 음우(陰佑)와 인사(人事)의 부흥이 다 하지 않았음을 알겠으니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라 칭송하였으니 후손으로서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귀향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부모님께서 연로하시기 전에 고향에 와서 선영을 모시고 관리하는 것이 바램이어서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군 복무 중인 막내에게 손 편지로 시골로 들어가고 싶다는 연락을 하고 즉시 사직서를 제출하려 했더니 직장에서는 물론 아내도 극구 반대였다. 당시 큰애는 서울에서 직장생활, 둘째는 미 예일대학교에서 유학 중이었다. 할 수 없이 사직을 1년 연기한 후에 2012년에 귀향하였다. 선영이 있는 고향에 조금 더 일찍 정착하였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지금도 고향을 지키며 향교와 서원에서 유학을 공부하며 유림의 후예로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KT 근무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1998년 IMF 때 과장으로 승진하여 네트워크 부분 진주 통신망운용국 시외선로과장으로 보임 받아 제주도(성산포)-육지(남해 송정) 간 제3 해저케이블 공사감독으로 바다 위 거문도 등에서 현장 책임자로서 큰일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또 해저광케이블 생산 공장인 일본에까지 출장을 가서 해외 기술을 도입하여 광케이블이 개통되게 하여 초고속 통신회선 수요 충족은 물론 우리나라가 일본·홍콩 등으로 연결되는 국제 관문 역할을 제공하게 한 것이 개인적으로 많은 경험을 쌓았으며 큰 보람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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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정사 전경
-신안정사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2018년부터 산청 선비대학에 <경서>를 배우러 다니면서 가족 단위에서 마을 리(里)로, 다시 면(面) 단위로 차츰 범위를 넓혀서 나름대로 사회 기여 활동을 하게 되었다. 집안 어르신들이 문중 일에도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2018년 단성향교 제20대 권재호 전교님(현 성균관 부관장)이 취임함에 따라 향교에 입문하였으며, 당시 강학 공간은 신안정사에서 하고 있었으므로 신안정사에서 배움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통신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지만 병행해 우리의 유학도 매우 중요한 학문이기에 향교의 유생들과 함께 열성을 다하여 공부하고 있다. 유생들 모두가 1인 2역 또는 3역이지만 선비의 고장, 단성 유림이기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향교 총무국장으로서 보람을 느낀다면.
“단성에는 소프트 적이나 하드웨어적으로도 역사성이 깊고 넓다는 것을 주위에서 인정해 주어서 단성 유림임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단성향교 명륜당이 2020년 12월 대한민국 보물 제2093호(당시 전교 권재호)로 지정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서 선현들의 업적에 감사드리며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의 선현들이 이룩했던 전통문화의 복원을 위해서 노력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단성 몽학관은 강성(단성)현의 주요 건물이었음에도 소실된 후 복원을 못 하고 모두가 아쉬워하던 중 지난 2021년 당시 권영복 전교가 전임 전교님들을 모시고 경상남도의회를 방문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관련기관을 수차례 방문하며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유림회관(몽학관)을 원형 상태로 복원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단성 유림의 큰 업적이라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도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예산을 지원해주어 성공적으로 복원해 준 관계기관에 고마운 마음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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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향교 제관분정

-평소 좋아하는 유교 경전 구절은.
“맹무백 문효 자왈 부모 유기질지우(孟武伯 問孝 子曰 父母 唯其疾之憂)라. 맹무백이 효를 질문하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근심하신다.’ 지금도 미수(米壽)이신 모친께서 외출한다고 말씀드리면 “차 조심하고 잘 다녀오너라” 하시는데 저가 세 살 때 옆구리에 악하담(깊은 염증)이 들어서 우리 마을 관정에서 대평까지 추운 겨울 뱃길이 막히면 경호강 얼음 위를 포대기에 싸서 업고, 가며 오며 눈물로 심 의원한테 치료받으며 염증을 입으로 빨아내셨다는 사실을 듣고,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저절로 가슴이 멘다.
또 자녀들과 함께 실천했으면 하는 경전 구절은 자공문왈 유일언이 가이종신행지자호(子貢問曰 有一言而 可以終身行之者乎) 자왈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그것은 서(恕)일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주위 사람과 관계가 돈독하다고 한다. 
“저는 항상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향에 돌아와 마을 이장과 여러 공공일이나 면(面)이나 군(郡) 관계 일을 하면서 주변의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어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다. 농촌활동을 하면서 여러 상(賞)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주변 분들의 덕분이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시면 더욱 좋아하시겠지만, 오래전 둘째 딸이 면접을 보러 갈 때 모든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될 터이니 “친외 조부모와 양친과 언니와 남동생의 가족 속에서 자라고 있다”라고 하라 할 정도로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의 마을 이웃들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며, 사회 경제활동을 할 때도 “헤어지더라도 인간적이었다”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2006년 함께 직장생활을 하던 사총사의 정을 길이 이어가기 위하여 공동으로 부동산 6천평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한 번 사귄 우정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믿음의 발로이다.”

-산청군민에게 하고 싶은 말씀.
“산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비의 고장이다. 천혜의 지리산이 감싸 안고 수많은 학자와 의병장이 구국의 대열에 앞장선 충절의 고장이다. 또 산청의 동의보감촌은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드높은 한의학의 대표적인 고장이다. 우리 산청인들은 어디에 살더라도 산청인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남명 선생의 가르침인 경(敬)과 의(義)의 정신을 염두에 두고 정도(正道)로 살았으면 한다.”

직장에서, 고향마을에서, 향교 서원에서 항상 근면과 성실로 최선을 다하는 그를 보며 이 사회의 빛과 소금과 같은 참신한 유림이라 생각한다. 솔처럼 대처럼 푸르고 곧은 그가 더욱 정진하여 산청 유림의 큰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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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심동섭 진주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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