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1) 농협 지부장 시절을 회상하며

산청시대 2020-01-29 (수) 07:00 4년전 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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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헐리고 없는 농협 산청군지부 옛 건물

고향 떠난 지 30년, 산청군지부장 금의환향

1996년 4월, 나는 진주에서 도동 지점장과 진주시 부지부장으로 근무하다가 고향인 산청지부장으로 금의환향했다. 중학교 졸업 이후, 고향을 떠난 지 30년 만의 일이다.
지부장은 지점장과는 격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다. 지점장은 사무실의 경영만 신경 쓰면 되지만 지부장은 경영은 물론이고, 회원조합과의 협력 그리고 대외활동이 더 중요하다. 대외활동을 농협에서는 농정활동이라고 말한다. 농정활동이란 농민과 농촌, 그리고 농업문제 전반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이처럼 농협 지부장은 아무나 앉히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부장은 능력은 물론이고 인품이나 성향도 고려 대상이다. 특히 고향에서 지부장을 한다는 것은 영광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고향에 지부장으로 가는 것을 꺼리는 분들도 있었다. 고향이니 그만큼, 아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자연, 무리한 부탁들이 들어올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곤란한 일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회원조합과 협력, 대외활동이 중요한 지부장

지부장급으로 승진하고 2년 차에 고향 지부장을 하면서 많은 경험도 쌓았다. 산청에 부임하니 마침 권순영 군수님을 비롯하여 기관장이 모두 좋으신 분들이었다. 정종인 군의회 의장님은 주민으로부터 존경받으면서 점잖은 분이시고 특히, 김현자 교육장님은 여성이었는데 그분은 여자답게 분위기 메이커셨다. 연세도 지긋하시고 예의도 깔끔하시고, 자기 분수도 확실하셨다.
군수님은 경남도청 과장으로 퇴임하시고 고향인 산청에 와서 군수에 당선되신 분이다. 그리고 그분은 술을 일절 못하시는 분이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다고 늘 강조하였다. 소위 노는 것에는 취미가 없는 샌님 같은 분이셨다. 그 후 그분은 좀 더 사셔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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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현 현 지부장과 대화를 나누는 신상조 전 실장

농협 지부장은 5대 기관장으로 예우해 줘

당시에 산청에는 농협과 경남은행이 있었는데 금고 예금은 농협이 전담했다. 그리고 군 단위의 4대 기관장 하면, 군수. 군의회 의장. 경찰서장. 교육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4대 기관장 외에 농협 지부장도 기관장으로 예우를 해 주었다. 그래서 소위 5대 기관장 하면 농협 지부장도 포함되었다. 그만큼 농촌에서는 농협을 알아주었다. 아니 알아주었다는 말은 어폐가 있고, 농촌에서는 농협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이리라.
한번은 지역구의 국회의원인 권익현 의원께서 오셔서 아침을 함께한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집권당인 민정당 사무총장도 하신 원로셨다. 그분이 국회의원을 하실 때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를 한창 건설 중에 있었다. 그분의 지역구가 산청. 함양이었는데 고속도로 나들목을 산청과 함양에는 각각 세 곳을 건설했다. 전국 어디를 가나 한 군에 나들목이 세 곳인 곳은 드물었다. 이게 모두 그분이 노력한 결과로 알고 있다.

군 금고 거래, 국회의원에 제안한 조합장

국회의원과 식사하는 자리에, 5대 기관장 외에 제2금융권 조합장도 함께한 일이 있었는데, 그 조합장이 군수께 금고 예금 건을 꺼냈다. 요지는 왜 농협에만 금고 예금을 거래하느냐며 조합하고도 거래해 달라는 이유 있는 발언이었다. 아마도 국회의원이 농협과 좋지 못한 감정을 이용하려는 속셈으로 짐작되었다. 이전 해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고, 농협 지부장 출신이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지만 결국은 권익현 의원이 당선되는 데는 이변이 없었다.
내가 진주에서 부지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농협 관계자는 직접 나에게 전화해 농협출신 후보를 밀라고 말할 정도로 농협에서는 관심이 많은 선거였다.
권익현 국회의원은 이후 2017년 6월에 별세하셨다. 그분 사위인 임태희 전 국회의원은 후일 내가 성남시 지부장으로 근무할 때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시군 금고는 제1금융권과 하게 돼 있어요”

그때, 국회의원이 머뭇거리자 옆자리의 깔끔한 군수님이 한 말씀 하셨다.
“조합장이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금고 관리는 정부 예산회계법에 제1금융권과 거래하게 되어있어요.” 결국, 조합은 제1금융권이 아니므로 금고를 담당할 수 없다는 논지다. 그러니 조합장은 답변이 궁색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예산회계법을 가끔 써먹는 일이 있었다.
내가 지부장으로 있을 당시 산청군농협 임원 중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분이 있어서 이 조항을 들어 내가 반론을 제기하여 그런 주장을 무산시켰다. 예산회계법이 지금도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존치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금고 예금을 건전화하고, 금고유치의 경쟁을 완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금고 예금 건전화, 금고 유치 경쟁 완화를

특히 농촌 지역에서 금고는 전체 예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유치경쟁이 치열하다. 경쟁이 치열하다 함은 금융기관 간에 서로 금고 예금을 유치하려고 모든 정력을 쏟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칫 과열되기 쉽고, 과열되면 출혈이 심해진다. 출혈이 심해진다 함은 과도한 기부금을 약속한다든지 무리한 금리를 수용한다든지 하면 조합의 경영이 악화되어, 조합이 큰 손실로 이어져서 결국은 금고의 건전화를 해치는 역 현상을 초래할 뿐이다. 그래서 금고는 중앙단위의 금융기관에 맡긴다고 생각한다.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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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조(69) 전 농협중앙회 감사실장은 산청읍 내리 출신이다. 산청초등학교(50회)와 명륜중학교를 나와 고 노무현 대통령 모교인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산청군지부장과 경기도 성남시 지부장을 거쳐 중앙회 본부 감사실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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