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2)
산청시대
2020-02-13 (목) 09:50
4년전
1869
농협 지부장 시절을 회상하며
97년 경찰서장과 부군수가 새로 부임하였다. 김성배 경찰서장은 나의 고교 선배였고, 조유행 부군수는 하동 출신으로 술은 많이 못 해도 잡기에는 두루 능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두 분과 티타임을 가지기도 했다. 조유행 부군수는 그 후 고향에 가서 민선 군수를 세 번 하셨다. 내가 은퇴하고 언젠가 농협 퇴직모임 때에 일행들과 그의 고향(하동)에 간 일이 있었다. 그때 연락을 하였더니 본인은 나오지 못하고, 대신 담당과장을 보내 선물을 한 아름 받아온 적이 있었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신임 산청부군수·경찰서장과 티타임 업무가 안정되자, 농협의 힘도 과시할 겸, 출향 인사를 모시고 고향발전을 보여주고도 싶어서, 산청 출신 전국 농협인 초청수련회를 개최하였다. 97년 6월7일과 8일 이틀 동안 신안면에 있는 폐교를 빌려서 전국 산청 출신 농협인을 초청하여 1박하면서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농협향우회, 전국 두 번째 규모 알려져 그날 군수를 비롯한 각 기관장을 초청하여 행사가 더욱 성대해졌다. 그 후로 산청 사회에서 농협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일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이런 행사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그 후에는 없어진 것으로 기억되어 매우 아쉽다. 이날 행사를 제1회라고 명명했었는데…….
두 조합에서 단일 통합한 산청군농협 산청군농협은 1992년에 군 단위로 통합된 조합이다. 군 단위로 통합된 전국 최초의 농협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산청농협은 산청군농협이란 명칭을 가지고 있다. 통합할 당시에는 이런 대규모의 통합보다는 남부지역과 북부지역, 두 조합으로 통합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면 북부지역은 별문제가 없는데, 남부지역은 본소의 위치를 단성에 둘 것인가, 아니면 신안에 둘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결국은 군 전체를 통합하기가 쉽다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로 통합하였다는, 통합을 주도한 당시 성두한 지부장의 전언이었다. 공직 은퇴한 조합장, 급환으로 별세 내가 지부장으로 근무한 1년 차에 면장 출신(공무원을 은퇴하고)이 조합장에 선출된 일이 있었다. 이분은 사람이 너무 온순하고 마음도 소심하며 욕심도 없는 분이다. 소문에 의하면, 휴일에도 농민들이 조합장께 전화하여 비료창고를 열어 달라, 농약 창고를 열어달라고 아우성이고, 직원들이 불친절하다, 마트에 물건이 없다, 농산물을 팔아달라는 등 각종 민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만큼 조합장은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그분은 조합장 몇 개월 하지도 못하고 1998년 2월 7일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안타까운 일이다. 단성면 사월리에 있는 사직단에 봄가을로 감사제를 지냈다. 이때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라는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주로 지방의 어른이 이 일을 맡아서 하였다. 군수가 초헌관으로 나는 종헌관으로 한두 차례 참례한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런 행사가 존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다. IMF 금 모으기 운동, 산청군도 동참 1997년 말이 되었다. 그해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인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어서 외환위기가 쳐 들어왔다. 나는 외환위기가 쳐들어 왔다는 말을 좋아한다. 쳐들어온 것이라는 말 대신에 다른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외환위기를 타개하자는 캠페인이 KBS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98년 농협 본산 서대문 입성‥감사실로 이런 혼란기 속에서 나는 고향에서 2년간의 지부장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1998년 4월 9일 자로 감사부속실 발령을 받았다. 난생처음으로 경남과 부산을 떠나서 서울로 상경하여, 농협의 본산(本山)인 서대문에 부임했다. 이 모두가 고향에서 지부장을 한 공로라고 생각되어 오늘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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