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산청 곶감

산청시대 2021-04-15 (목) 10:20 3년전 2191

노영록/ 변호사

 910ba68f9694aadf39f3658a90eda610_1618449

1.
산청 곶감은 붉고 투명하다. 그래서 맛이 좋다. 붉은색은 정열을 상징한다고 하고, 투명함은 빛이 물질을 통과하는 현상을 말한다. 맛이 좋다는 것은 먹고 싶게 하고 건강에 좋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산청 곶감은 고유명사다.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이러한 곶감은 산청 곶감이 유일하고 최고이기 때문이다. 왜 산청 곶감만이 이런 특성을 가지게 되었을까. 어느 토요일 아침 고향에서 온 산청 곶감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곶감이 익는 데 시간이 걸리듯 달포가 지나서야 언뜻 떠올랐다. 지리산과 남명 선생이다. 

지리산이 아니면 산청 곶감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남명이 없었다면 그렇게 반듯하고 예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명 조식 선생(1501-1571)은 1561년 지리산이 좋아 산청으로 오셨다. 요즘 말하는 힐링을 하며 소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오며 공부하고 체득한 바를 후대에 전하러 오신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산청 곶감과 같이 정열이 가득하고, 걸어오신 길은 그처럼 맑으며, 그의 가르침은 의검(義檢)으로 불의를 쳐서 나라를 건강하게 만들라고 한다. 곽재우 장군(1552-1617)이 홍의(紅衣)를 입은 것도 우연이 아닌 듯하다. 산청 곶감을 보면 남명 선생의 얼굴과 홍의장군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남명이 없었다면 반듯하고 예쁘지 않았을 것

떠오른 김에 더 떠올려보자.
산천재가 완성된 어느 늦은 가을날 매화나무 옆에서 지리산을 보고 서 있던 선생의 눈에 땡감이 보였고, 땡감은 부끄러워 얼른 고개를 숙였다. 선생은 고개를 들라고 점잖게 말씀하셨고 감은 살포시 고개를 들었다. 순간 선생님의 붉은 얼굴을 본 땡감은 벗은 몸이 부끄러워 더 붉어졌다. 선생은 장난기가 동하시어 입에 바람을 머금고 후-하자 감은 그 흉내를 내려고 했다. 감이 두 볼에 바람을 잔뜩 머금어 둥글어지는 순간 지리산 바람이 말렸다. 어르신을 흉내 내지 말라고 말렸는지, 습기를 말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구약>이나 <신약성경>(AD96년경 완성)에도 산청 곶감이 어떻게 생겨날 것이라는 예언은 없고, <난중일기>(1592-8년)에도 <동의보감>에도 산청 곶감이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관한 기록은 없다.  

지리산을 타고 내려온 바람은 땡감이 얼굴이 붉어지도록 바람을 머금은 채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고 헛기침을 하며 돌아섰다. 지팡이를 끌고 덕천강을 그리며 동녘으로 가다가 허준을 만나 바람처럼 말한다. ‘저 땡감이 옷을 벗고 바람을 머금었을 때 일렬종대로 매달아 말렸다가 약으로 쓰라. 붉고 맑고 둥그니 피부미용에 좋고 혈액을 맑게 하여 순환을 도울 것이다. 세상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게 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줄 것이며,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는 변종까지도 제압할 것이다.’ 허준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아무도 없는데 백의 장군이 지나다 빨랫줄에 걸어 놓은 광목 대님이 바람에 흔들렸다. <동의보감> 어느 쪽에 산청 곶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있을 법하다. 

지리산 바람이 허준 만나 곶감을 말해

남명 선생이 산청 곶감을 만드셨는지는 모르지만, 조선 초기에도 감에 관한 기록이 있다니 남명 선생님도 곶감을 보았고 드셨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지금은 온난화로 강원도 강릉 부근까지 감의 한계선이 올라갔지만, 산청이 산청 곶감의 유일한 고장이고, 산청 곶감이 세계에서 가장 붉고, 가장 맛있고, 투명한 것은 사실이다.
 
2.
산청 곶감처럼 바람을 좀 넣자면, 이 세상에서 산청 곶감이 유일함은 미국의 역사 이전의 기록이 알려주고 있다. 꿰어서 말렸기에 곶감이라 하였다는데, 나는 고방에 보관하였기에 고방 감(곳감)이란 의미로 그렇게 불렀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고방에 있는 곶감을 싱키다가 들켜서 ‘호간’에 숨어 먹던 기억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리라.

산청 곶감은 미국 역사 기록이 알려

‘호간’이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미국 테네시주(州)에 있는 ‘차타누가’는 그곳에 살던 원주민 ‘차타후치’족(族)이 살던 마을의 이름을 딴 도시다. 그곳 박물관에 있는 원주민 언어 사전에 ‘호간’(hogan)이라는 단어가 있고 그 뜻은 실외 변소였다. 1998년경 나는 그 단어를 보고 깜짝 놀라 산청사람이 북미 원주민의 조상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였다. 산청 곶감을 싱키 묵다가 북아메리카까지 도망가지는 않았겠지만. 그 후 나는 나중에 누군가가 북미 원주민의 언어와 우리 사투리의 연관성을 연구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이 바람이 산청 곶감을 만든 지리산 바람처럼 세계적인 연구가 되길 바라면서.

3.
고향에서 보내온 산청 곶감을 먹고 피로회복차 졸다가 허준 선생님에게 무슨 약이냐고 물었다. 지리산 바람을 머금은 보약이라 하셨다. 그 붉은 빛은 남명 선생님의 얼굴보다 조금 더 붉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 감 깎는 칼이 갑자기 경의검으로 일어나 호통을 치는 바람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남은 곶감을 한입에 넣고 창문을 열었다.
지리산 바람을 타고 온 빗방울이 얼굴을 때릴 때 나는 산청 곶감을 보낸 후배가 낸 숙제를 풀기 위해 신우서점에서 싱킨 연필에 침을 바르고 있다.

910ba68f9694aadf39f3658a90eda610_1618449

글쓴이 노영록(69) 변호사는 산청읍 부리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법무법인 세광(서울 서초) 대표변호사와 재서울산청군향우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이전글  다음글  목록
정치
자치행정
선비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