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본능과 모성에 관한 생각

산청시대 2021-07-29 (목) 23:33 2년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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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식 / 산청한방약초축제 집행위원장

요즘은 거의 날마다 뒷동산 감나무밭에서 풀을 베는 일이 내 일과이자 운동이다. 예초기도 없고 그런 기구를 사용할 생각도 없으니 늘 원시적인 방법인 낫으로 벤다. 그런데 지난봄 철물점에 가서 골프채 길이만큼 긴 낫을 보고 시험 삼아 사서 써봤더니 신통하게도 능률도 오르고 운동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함부로 휘둘러 세 번이나 새로 샀지만 한 자루에 단돈 만원이라 아까울 리 없다.

열흘여 전 일요일 해거름, 예초기를 잘 다루는 6인조 농사멤버 배윤경 님과 풀베기를 했다. 나는 위에서부터 아래쪽으로, 예초기 님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베는데 그렇게 해서 두 시간쯤 지나 거의 가까워 질 무렵, 나의 긴 낫으로 나무 밑을 휘젓는데 그 아래 소똥 무더기같이 시커먼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기분이 섬뜩하여 잠시 멈추고 가만히 내려다보았더니 죽은 듯이 엎드려있는 비둘기가 아닌가. 그런데 죽은 것 같았지만 직감으로 ‘아! 알을 품고 있구나!’

방해될까 숨죽이면서 그 부근의 풀베기를 포기하고 물러섰다. 그런데 그 사정을 알 턱없는 예초기님, 그곳에 다다라 깔끔하게 휘젓는데 심각한 위기 앞에 더는 버틸 수 없던 암비둘기는 알을 둔 채 후두두 날았다. 그 칼날이 알 윗부분과 비둘기 배 밑으로 지나칠 무렵이었으리라. ‘아, 내가 미리 일러줄걸’ 후회가 되었지만 떠나간 배다. 알이 있어서 다시 돌아올 거라고 예초기 님도 아쉽게 한마디 남긴다.

그 이틀 뒤, 조금 떨어진 발치에서 살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암비둘기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정말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알에서 깨칠 새끼의 생명을 보려고 제 생명의 위험도 무릅쓴 그것을 본능이라고만 해야 할까, 모성애라 해야 할까, 둘 다라고 해야 할까? 보호막이 되었던 풀섶도 없어져 버린 황량한 맨 자리에 비바람을 버티며 인간이 쓴 도구가 아니더라도 온갖 산짐승과 벌레들이 먹잇감으로 노리는 일촉즉발의 노출된 전선에서 오직 하나의 목표 ‘태어날 새끼’를 위해 굳건해 있다.

그 애타는 어미 덕분에 새끼는 삐악거리며 태어날 것이고 그 어미는 탈진해서 생을 마칠 것이 불 보듯 하다. 저 알이 그리라도 되었으면 좋겠는데…. 마음이 착잡하고 조마조마하다. 사람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짐승보다 무엇이 더 나은가? 이후에 비둘기의 새 생명도 총총걸음으로 그곳을 떠나고 어미도 죽든 살든 눈에 안 보였으면 좋겠다. 내 심사가 편하고 싶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자유를 누리고 질서 있게 살 수 있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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