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악수합시다

산청시대 2021-11-18 (목) 00:21 2년전 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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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현 / 산청 함양사건 희생자 유족회 이사

배상운동 지친 유족들에게
피해 입힌 당사자 나타나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

한참 남북 간에 싸움이 전쟁 치열할 때 토벌대 군인들에게 불려가 우리 고장 사람들 700여 명이 정월 초이튿날 개죽음을 당한 후, 할머니는 이 말을 아무한테도 하지 말라고 해서 나는 장년이 되도록 함구하고 살았다. 왜 할머니의 말대로 따라야 하는지 잘은 몰랐지만, 그게 빨치산 통치하의 해방구에서 약 5개월 동안 살아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필자는 나름대로 이런 변을 당한 것은, 순전히 무지한 탓이라고 생각해서 아버지가 사두고 간 논밭 몇 뙈기를 팔더라도 공부를 하겠다고 백모에게 강경한 말투로 요구했다. 내 요구에 거절할 수 없는 위협이 느껴졌던지 당연히 논밭을 팔아 학비를 충당해 주었다. 그 덕분에 교대도 졸업했다.

장년에 접어들면서 군인에게 항거하듯 청와대 진정으로부터 출발한 글은 국민제안 그 후에 각종 투고 그것도 별 효과가 없다 싶어서 1995년 6월 25일에 실화소설 <돌개바람>을 내어 공비토벌대의 만행을 처음으로 만천하에 대 놓고 항의했다. 그때는 전국 일간지에서 필자의 첫 작품에 홍보와 찬사를 함께 보내주었다. 방송국에 초대를 받아가서 공비학살사건을 성토한 필자의 아픔에 동조하며 함께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당시 가해자들이 한 번도 나타나질 않는 걸 보면 그들도 무자비한 칼을 휘둘렀다는 죄책감을 숨기고 70년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정부는 1996년 잘못했다는 한마디 말을 헌 됫박 양식처럼 내놓고는 종무소식이다. 필자를 비롯한 모든 유족은 배상운동에 지친 나머지 이제는 보상이든 위로금이든 내놓기만 하라고 구걸하는 거지 행색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큰 지리산골에 소를 판 군 당사자나 후손이 나타나 입힌 당사자가 나타나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 마음이 사르르 녹아 내미는 손을 덥석 잡을 것 같은데 이것도 지나친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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