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 자운영과 아카시아

산청시대 2021-12-29 (수) 23:36 2년전 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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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법학박사 / <본지> 편집위원, 전 진주경찰서장 

 

봄이면 논바닥에 울긋불긋 예쁜 꽃을 수놓는 풀이 있다. 두해살이 콩과식물인 자운영은 선조들의 전통농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식물이었다. 자연 농법에서 가장 좋은 거름은 그 땅에서 수확하고 남은 부산물을 그대로 썩도록 남겨두는 것이다. 어여쁜 꽃을 피워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는 흙으로 돌아가 토양을 풍성하고 기름지게 만드는 천연비료였다. 

 

벼와 자운영은 생장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자기만 살겠다고 치열하게 생존경합을 벌이며 상대를 해치는 관계가 아니라, 사이좋게 공생하는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맺으며 생애를 살다 간다. 자운영은 벼가 남긴 부산물의 거름으로 평화롭게 살다 가고, 벼는 자운영이 가꾸어 놓은 자양분으로 실한 열매를 영글게 할 수 있으니 서로가 상생의 도리로 이바지한다. 그리고 자운영이 살다간 자리는 벼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식물도 다 잘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아카시아라는 나무가 있다. 오월 경이 되면 동네 인근 야산에 순백의 꽃과 싱그러운 향기로 꿀벌을 불러 모으는 나무이다. 그러나 이 나무는 생존하면서 토양 속의 알칼리성분과 인산의 부족을 가져오게 함으로써 토지를 척박하게 한다고 한다. 아카시아는 토지를 산성화시킬 뿐 아니라 토양 속의 자양분을 싹쓸이해버려 주변의 다른 나무가 자라는 데 지장을 주는가 하면 아카시아가 살다간 자리는 어떤 다른 나무도 잘 자랄 수 없다고 한다. 

 

사람도 자운영과 같은 사람이 있고 아카시아와 같은 사람이 있다. 세상을 함께 더불어 살면서 어둠과 역경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빛이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사람, 믿어 주고 마음을 헤아려주는 그런 사람이 자운영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정해진 룰을 무시하고 주위 사람들을 헐뜯고 곤란하게 하면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이 아카시아와 같은 사람이다. 

 

인향만리(人香萬里), 덕향만리(德香萬里)라는 말이 있다. 자운영과 같은 그런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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