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논이 사라진다면

산청시대 2022-01-11 (화) 00:20 2년전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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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약 45억6,700만년 전 형성되었으며 태양으로부터 3번째 행성이다. 농경 생활이 시작된 것은 기원전 6,000년 전으로 짐작하고 있으며 문헌에 의하면 1932년 경주 신라 옛 무덤에서 요즘 것과 비슷한 쇠로 만든 가래와 쇠스랑이 왕겨와 함께 출토되었다 한다. 지구가 형성되면서 땅은 처음부터 있었겠지만 논은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원시적인 농기구를 사용하여 피땀 흘려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소중한 땅을 한때는 빼앗기고 말살당하는 부끄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나는 지리산 밑에서 태어나 지리산 권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늘 농경지를 접하며 살아왔다. 온 국민이 새마을 정신으로 다져진 국민총화의 의지가 농촌의 근대화로 잘살아 보자는 것이 우리들의 염원이며 농촌의 근대화는 토지기반조성에 있을 무렵 다년간 농경지 정리사업 조사설계업무에 종사하다 보니 논은 식량안보, 환경보전, 전통문화 유지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역할과 가치를 갖고 있음을 그 누구보다 더 실감하게 되었다.

 

논은 우리에게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며, 왜 지켜야 하고 또한 논이 사라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첫째 논에서 생산하는 쌀은 우리의 생존과 생활을 맡아온 에너지원이었다. 따라서 논은 단순히 쌀을 생산하는 땅인 것만 아니라 산업의 발전과 생활환경편익의 토대이다.

둘째 논은 천연적인 댐이다. 댐은 홍수조절과 유수를 저장하고 취수할 목적으로 축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형과 기후특성은 강수가 여름철에 편중하여 집중호우가 잦다. 강수가 많은 여름철이 벼의 생육 기간이므로 논물가두기를 위한 논두렁이 홍수조절 기능을 가지는 댐의 둑과 같다. 즉 우리나라 논 면적 823헥타르(2020년 통계청 자료)에 논둑 높이 30㎝의 물 깊이를 계산하면 홍수 때 논에 가둘 수 있는 수량은 약 25억톤이다. 진주 남강댐 총저수량 3억톤을 감안하면 8배에 해당하며 춘천댐 총저수량의 약 17배 저수량이 된다. 

 

따라서 논은 홍수조절능력과 댐의 홍수조절비용 경감효과 및 댐 하나 건설비용을 반영한다면 몇조 원에 달할 것이다. 다목적 댐 건설에는 많은 이점도 있지만 반대로 수몰로 인한 생활기반, 경제문제, 환경문제 등 많은 문제가 대두되는 것도 사실이다. 예사롭게 생각할 수 있는 논의 홍수조절 기능이 힘들여 건설한 댐보다 크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논은 지하수를 저장해 준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물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유엔은 1992년 3월22일을 세계 물의 날을 제정했으며 우리나라는 유엔의 요청으로 1995년부터 유엔이 제정한 3월22일을 물의 날로 제정, 기념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지하수는 대부분 사람의 관심에서 지나칠 수 있지만, 사실은 인류가 사용하는 물의 가장 크고 귀한 저장고는 지하수이다.

 

우리나라는 아직은 주로 지표수인 하천수나 호소수를 취수원으로 사용하지만, 지하수는 전세계식수의 거의 절반을 공급하고 있으며, 농업용수 40%, 공업용수 30% 수준을 지하수로 충당하고 있다니 참으로 소중한 자원이다. 또한, 논에서 벼를 재배하기 위해 담수를 하기 때문에 논바닥을 통하여 땅속으로 스며드는 물의 약 55%는 배수 또는 복류수 형태로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고 나머지 45%는 지하수로 저장된다고 하니 논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하수는 생태계유지뿐 아니라 지반침하 해수 침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니 논의 지하수 함량 기능이 가지는 가치는 경제적인 평가를 넘어서는 것임이 틀림이 없다.

 

넷째 논은 환경보전과 생태보전기능을 가지고 있다.

더운 여름철 논의 담수로 인한 대기의 열을 식혀주는 역할을 하며 토양유실을 막아준다. 토양유실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에는 지형과 강우, 토양특성 및 토양관리, 재배작물의 종류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논은 유실되는 토양을 받아서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논은 지하수 오염 저감과 수질 정화, 대기 정화 외 생물의 다양성을 확보해 준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논은 쌀을 생산하는 단순한 공간만이 아니라 많은 공익기능을 다하고 있다. 따라서 논이 사라진다면 모든 공익기능과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암석이 풍화되어 1㎝ 두께에 살아 숨 쉬는 흙이 되기까지는 200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1년 우리나라 전체 논 면적 959,914ha가 2020년 823,895ha로 최근 10년간 14% 감소하고 있다. 감소원인은 농민의 고령화, 산업화, 농지전용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공업용지나 주택 대지 등 각종 산업발전에 따른 저생산성 토지가 고생산성 토지로 변하는 게 경제적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긴 안목에서 우리의 논은 논으로 지켰으면 한다.

 

벼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논을 지키는 것이고 논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100년간 세계의 평균기온은 약 0.7℃ 상승한 데 반해 우리나라는 약 1.5℃ 증가 폭을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서 지구 온난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벼농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농업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우리 논 우리 쌀 지키기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

 

나는 가끔 시골의 농촌 길을 드라이브하는 것을 좋아한다. 봄에 못자리하고 모내기를 한 논을 쳐다보면 생동감이 들고 여름철 푸른 들판을 쳐다보면 마음이 한결 상쾌해지고 벼들이 노란 옷을 입기 시작하는 가을 황금들판의 풍경을 보면 풍요로운 마음이 들기에 고생하는 농부에게 항상 감사의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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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상 / 전 (주)경성기술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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