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봄이 온다

산청시대 2022-02-17 (목) 09:33 2년전 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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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식 / 전 진주경찰서장

 

만물이 동면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입춘이 지나고 대한(大寒)을 넘기면 얼어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달이고 겨울의 중심이며 결실의 가을과 새싹 뜨는 봄을 연결해 주는 계절 간의 끈, 1월도 갔다. 동면(冬眠)으로 에너지를 비축하기도 하고 새로운 한 해를 설계하는 절호의 그 1월이 빠르기에 더없이 아쉽다. 사람은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생명체 중에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고 책임질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기에 더욱 이 시점이 소중하다. 얼음장 같던 날씨는 서서히 기가 빠지고 제가 키워 떨어뜨린 낙엽으로 제 뿌리를 감쌌던 흑갈색 이불 위로 뻗은 나뭇가지엔 금방이라도 터질 듯 물이 올라 탱글탱글해졌다.

 

자연의 이치가 이렇거늘 가장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새 무슨 준비를 하고 있었나. 마약 같은 기계문명의 노예가 되어 핸드폰을 신주처럼 모시고 카톡에 빼앗기고 입맛대로 골라보는 TV 채널에서 나라와 국민을 팔아 말장난과 쌈박질하는 정치인과 평론가의 궤변에 빠져 맑은 정신과 냉철한 이성은 허공 속에 떠 있다. 보약 되고 마음 충전하려고 사놓은 교양서적은 작심삼일이 되어 코앞에 두고서도 남의 집 담장 바라보듯 스쳐 지나치다 보니 중간중간에 꽂힌 책갈피가 한심하고 나태한 나를 비웃고 있다. 

 

민망함에 마음을 추스르고 대충 셈을 해본다. 한겨울 내내 바보상자들에게 넋 나간 시간은 너무 길었고 내일을 위한 준비의 시간은 턱없이 짧아졌다. 새로운 한 해와 내 나이 앞에 철부지인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문명이라는 좋은 이름으로 사람과 한 덩어리가 된 핸드폰과 텔레비전이 사람의 영혼으로 둔갑하고 사람은 바보상자의 멍청이가 되어 답답한 헛똑똑이로 개조된 지 오래다. 올 한해는 코앞에 닥친 대선과 자치단체장 선거가 줄줄이 이어진다. 내 소중한 시간을 또 이 바보상자에 얼마나 많이 갖다 바칠지? 마음으로는 절제하자고 다짐을 하지만 딱 끊어버릴 수가 없을 것 같아 난감하다.

 

문명의 이기가 문화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이웃과 친구와 가족마저도 멀어지게 하고 손편지나 전화 한 통으로 그리움과 아쉬움을 달래던 소박한 마음마저 빼앗아 갔으니 어찌 그 문화생활이 고맙다고만 하겠는가. 사색과 충전의 시간으로 넉넉히 비워준 조물주의 소중한 겨울을 이렇게 허비한 데 대해 뼈아픈 반성을 한다. 새봄을 맞으며 정신을 가다듬고, 이제는 오롯이 내가 주인 되고 내 영혼이 살아 있음에 감동하면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밀려온다 해도 희망이라는 위력으로 당당히 마주쳐보자. 봄기운이 몸 안에서 희망의 에너지로 충전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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