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 쑥

산청시대 2022-03-30 (수) 23:56 2년전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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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편집위원 / 법학박사, 전 진주경찰서장

‘쑥’은 우리 민족사에서 <삼국유사> 단군 설화에 등장한다. 이는 우리 민족이 쑥을 이용한 역사가 5천여 년에 가깝다는 얘기다. 환웅은 하늘로부터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환웅에게 와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신령한 쑥과 마늘을 주면서 ‘이것을 먹으며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될 것’이라고 하여, 호랑이는 이를 잘 지키지 못했으나 곰은 지켜 여자가 되었고 환웅은 이 여자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다음 제일 먼저 나타난 풀이 쑥이었다고 한다.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고, 그 무서운 다이옥신을 겁내지 않는 식물이 또한 쑥이다. 이는 쑥 속에 함유된 다량의 항산화제(비타민 A, C, E, K 등)들이 다이옥신을 분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각종 농약에 오염된 식품을 섭취함으로써 입게 되는 피해를 줄이려면 쑥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다.

<동의보감>에 ‘쑥은 오래된 여러 가지 병과 부인의 하혈을 다스려 안태를 시키며, 복통을 멎게 하고 적리와 백리를 낫게 하고, 치루로 피를 쏟는 것과 하부 의창을 낫게 하며 살을 살아나게 하고 풍한을 소산시키며 임신하게 한다’고 되어있다. 또 <본초강목>에는 ‘쑥은 곳곳에서 자라는데 길가에 있는 것이 좋고, 음력 3월 초와 5월 초에 잎을 뜯어 햇빛에 말리는데 오래 묵은 것이라야 약으로 쓸 수 있으며, 성질은 날것은 차고 말린 것은 뜨겁다’고 씌어 있다.

동장군이 물러가고 여기저기 따사한 봄볕이 들어 앞산 뒷산에 진달래가 울긋불긋 꽃물을 들이기 시작하면 동네 누나들은 소쿠리를 옆구리에 끼고 쑥을 캐러 나간다.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제방 둑에 올망졸망 엎드려 쑥을 캐는 누나들의 모습은 언제나 그리운 고향의 봄 풍경이다. 저녁 무렵 누나가 쑥 소쿠리를 들고 들어오면 싸하면서도 향긋한 쑥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지고, 저녁 밥상은 영락없이 쑥 요리가 나오곤 했었다. 쑥떡, 쑥버무리, 쑥밥, 특히 입맛을 돋우는 것은 쑥국이다.

왜 ‘쑥’이라 하는지 몰라도 마음에 쑥 들도록 정겨운 이름이다. 무엇보다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든 봄볕이 드는 곳이면 솟아나지 않는 곳이 없어 무척이나 친숙하고 민주적인 감정이 드는 풀이다. 世與靑山何者是(세여청산하자시) 春光無處不開花(춘광무처불개화)라는 시구가 생각난다. ‘속세와 청산 어느 쪽이 든 봄볕이 드는 곳이면 꽃피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산중에 따사로운 봄볕이 드니 여기저기 쑥들이 고개를 내밀어 시절인연(時節因緣)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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