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 칡

산청시대 2022-05-27 (금) 09:34 1년전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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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편집위원 / 법학박사, 전 진주경찰서장

칡은 하루에 최고 30㎝씩이나 자라면서 촉수에 닿는 나무는 무조건 타고 올라가서 햇빛을 못 보게 해 죽게 만들어버린다. 식물 생태계의 무법자로 악명이 높은 칡은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는 구황식물로 아주 이로운 식물이었으며, 약이 되기도 했다. 섬유질과 단백질, 철분, 인, 비타민 등 영양분이 골고루 들어 있어 건강식품으로 알아주고 있고, 술독을 풀거나 구토, 고혈압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칡 하면 떠오르는 말이 갈등(葛藤)이다. 목표나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마찰이 일어나거나 충돌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갈(葛)은 칡의 한자 말이고 등(藤)은 등나무의 한자 말이다. 갈은 오른쪽으로 감아 오르고 등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 둘이 만나면 서로 심하게 엉켜서 풀기 어려운 지경이 된다.

어떤 이는 우리 사회의 변천과 발전을 갈등의 역사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정치판에서 진보와 보수가 싸우는 꼴을 칡과 등나무가 서로 자기 세력을 신장하기 위해 아귀다툼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고려 말 이방원과 정몽주의 갈등을 들 수 있다. 이방원이 하여가(何如歌)로 정몽주를 회유하려 하자 정몽주가 단심가(丹心歌)로 거부한 것이다. 여기 하여가에 만수산 드렁칡이 등장한다. 결국 칡은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절대강자로 세상을 제압한다.

한편 갈등이 전혀 없는 사회도 반드시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갈등은 제대로 해소하면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다만 갈등 해소의 노력은 한쪽 방향에서만 일어나서는 효과가 없고, 반드시 쌍방향에서 작용해야 한다고 한다. 여하튼 갈등은 해소되어야 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갈등 해결의 핵심 요소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사주팔자를 따지는 명리학(命理學)에서 사용하는 등라계갑(藤蘿繫甲)이란 말도 갈등과 같이 덩굴식물에서 유래된 것이다. 등라계갑이란 말은 자신의 몸을 남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속성을 말하는데, 칡과 같은 덩굴식물이 주변에 있는 다른 식물을 감고 올라 성장해 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현상이 지나치면 상대 식물에 지대한 해를 입히고 만다. 그래서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개체 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부득이 칡을 제거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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