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지금은 사라진 명륜중학교의 추억

산청시대 2022-06-09 (목) 01:03 2개월전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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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읍 전경. 왼쪽 아파트 자리가 명륜중학교 옛터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니 별 의식 없이 다녔는데 중학교는 좀 다르다. 내가 최초로 선택한 학교다. 선택한 경위야 말하지 않겠다만 얼마나 어렵게 살았으면 학비가 부족하여 반듯한 공립을 두고 사립학교를 선택했을까.
메주콩(명중을 공립 중학교 학생들이 그렇게 부르면서 우리를 놀려 먹었다)이라 놀림까지 받으면서 다닌 학교지만 나에게는 금덩어리 같은 보물이다.
보배(?) 같은 아내를 그 학교에서 찾았고, 지금까지 아들 하나에 딸 하나 낳고 잘살고 있으니 여한이 없다. 그뿐이면 말도 안 하겠다. 선택하고 보니 보통학교가 아니었다. 명륜(明倫)이다. 인간의 도리를 밝힌다는 명륜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명륜이란 이름을 가진 학교는 중학교는 없고 고등학교가 하나 있다. 강릉의 명륜 고등학교가 그곳이다.
각설하고 명륜은 그래서 더욱 그립다. 지금은 폐교되어 공립과 통합하였지만, 멸시받고 공부한 그 학교가 그립다. 친구들도 그립고 선생님도 보고 싶다. 친구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우선 선생님부터 그리운 사연을 불러본다.

우리 학교는 1951년 11월에 산청 명륜당 재단으로 허가받아 개교한 학교로 1969년에 산청여자중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고 1977년 9월에 학교법인 우석학원으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그 후 1988년 3월에 여중. 여고로 분리되었다가, 지금은 산청중학교와 산청고등학교로 각각 흡수 통합되었다.
내가 1998년 산청에 근무(농협중앙회 산청지부장)할 적에 산청 여자 중 고등학교의 교지 <청심>이라는 책(제5호)에 몇 자 적어 중학생 시절의 추억담을 기고한 일이 있었다. 지금 학교 교정은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산청군민의 생활 터전이 되었다.

1951년 명륜당 재단이 문을 연 명륜중학교
여러 선생님 중에 3년 동안 우리들의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을 모셔본다. 칠 십여 명이 넘는 망나니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신 그분, 배영자 남자 그분을 그려본다. 아, 생각만 해도 안타깝다. 88올림픽 때 선생님께서 평소에 그토록 좋아하시던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중에 운명하셨다. 심장마비로 기억한다.
그러니 더욱 그분을 (죽도록?) 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때 고인의 장례식(부산)에 동기들이 참석하여 애도한 것이 어제 같은데 세월이 많이도 흘렸다. 사모님께서는 서울에서 아들과 같이 사신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었는데 지금도 변함없어 신지 궁금하다. 정말로 궁금하다.

담임 배영자 선생님은 88올림픽 때 급서
배 선생님은 진주 농대(?)를 졸업하시고 학생 때는 축구 선수셨고 우리 학교에서 실업(농업)과 체육을 담당하시었는데 축구 선수답게 훤칠한 키에 얼굴도 미남이셨다.
3학년 어느 날인가 밤에 친구 몇 사람이 하도 심심하여 작당하고 교무실(교무실 겸 도서실) 들어가 채운 열쇠를 따서 두툼한 사전 두 권(국어와 영어)을 훔쳤다. 다음 날 그 책을 팔아서 술을 사 먹은 기억이 새롭다. 아마도 외지(차황면?)에서 자취하는 학생으로 기억한다.
다음 날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서 누구의 짓이냐고 추궁하셨는데 나는 모른다고 딱 잡아떼었다. 당시 내가 반장이었으니 나를 추궁하면 범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신 모양이었다. 거짓말을 하려니 가슴이 찔끔하였다. 당시 친구 세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고백하면 나는 망만 보았다. 그러나 공범임은 분명하다.

교무실 사전 훔친 사실, 추궁에도 침묵
또 한 분의 잊지 못할 선생님이 계셨다. 성함은 강병창 선생님이시다. 선생님과 나와의 인연은 참으로 묘하다. 그게 그렇다. 내가 그분 밑에서 중학교 2학년과 3학년 2년을 배웠는데 그게 끝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고등학교(부산상고)에 진학해서 2학년 1학기 올라갈 때 그분이 우리 학교로 전근되셨다. 조회 시간에 전입 선생님들의 소개가 있었다.
그때 나는 깜짝 놀라 조회 마치고 운동장에서 바로 그분은 만났다. 서로 부여잡고 나는 울었고 선생님은 웃으셨다. 얼마나 반가운지 정신까지 혼미했다. 그 후 그분께 고등학교에서 2년을 더 배웠다. 거기 까지라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때 배운 과목은 상업영어로 기억한다.

중학교 선생님, 부산의 고등학교서 만나
한참 후에 내가 창원에 근무할 적에 우연한 기회에 창원대학교 경영대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때 그분이 우리 담당 교수로 오셔서 1년 동안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중학교 때 그분이 맡은 과목은 영어였는데 대학원에서는 회계학이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영어를 가르치다가 회계학이라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 은사님은 어떻게 하셨길래, 시골의 이름 없는 중학교에서 부산의 명문고를 거쳐서 국립대학의 교수까지 되셨는지, 미천한 나로서는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분은 우리 학교에서 고시 공부를 하시다가 방향을 교사직으로 전환하였다는 사실을 그 후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애석하다. 그 후 그분의 소식을 모르고 있으니, 아마 지금은 팔순 중반을 넘겼을 것이다.

과학 선생님 작고‥여 선생님 한 분 근무
또 한 분 배종학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은 과학을 담당하신 분이셨다. 애석하게도 언제 돌아가셨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좌우지간에 돌아가신 것만은 분명하다. 사후에 들었으니까. 어떻게 들었냐고? 그분의 따님이 바로 내가 다닌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기 때문에 잘 안다.
그다음에는 우리 학교 유일한 여자 선생님이 계셨다. 남자 선생님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분이다. 강미자 선생님, 이 여선생님은 교감 선생님의 처제로 알고 있다. 그 외는 민영석 교장 선생님, 또 이상열 교감 선생님이다.
교장 선생님은 수학을 가르쳤고, 교감 선생님은 국어를 가르치셨다. 아마도 살아 계신다면 구순은 넘었을 것이다.
이 두 분 모두 교과목을 가르치신 분이니 지금 같으면 어림없는 말씀이다. 또 한 분 한문 선생님이 계셨는데 아쉽게도 존함을 잊었다. 성은 오 씨로 기억하지만, 함자는 기억에 없다. 애석하다. 이분은 아마 살아 계신다면 백수에 가까울 것이다.

민영석 교장 선생님은 현재 산청읍 거주
이렇게 우리들의 선생님은 모두 일곱 분이셨다. 그런데 임창섭 교장(삼천포여고 전 교장이며 나와는 초등학교 동기)께 알아보니 당시 교감 선생님과 한문 선생님은 수년 전에 별세하셨다고 하고 민 교장 선생님만 산청에서 생존해 계신다고 한다. 언제 교장 선생님을 찾아뵐 계획이고, 돌아가신 분들께는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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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조 편집위원 / 전 농협중앙회 감사실장

신상조(71) 전 농협중앙회 감사실장은 산청읍 내리에서 태어났으며, 산청초등학교(50)와 명륜중학교를 나와 부산상고를 졸업했습니다.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그는 산청군지부장과 경기도 군포시·성남시지부장을 거쳐 중앙회 감사실장을 지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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