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 싸움닭

산청시대 2022-12-02 (금) 11:16 1년전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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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편집위원 / 법학박사, 전 진주경찰서장

 

사람들 중에 동작이 민첩하고, 사납고 호전적이면서, 쉽게 남과 다투는 기질을 가진 사람을 비유적으로 '싸움닭'이라고 한다. 중국 주나라 선왕은 닭싸움을 몹시 좋아했다. 어느 날 튼튼한 닭 한 마리를 갖고 오더니 투계 조련사인 기성자에게 최고의 싸움닭으로 만들라고 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닭이 싸우기에 충분하냐?”고 물었다. 기성자는 “사납고 제 기운만 믿고 있어 아직 멀었다”고 대답했다. 

 

또 열흘 뒤 왕이 채근하자 그는 “다른 닭의 소리를 듣거나 그림자만 보아도 바로 달려드니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열흘 후에는 “아직도 다른 닭을 보면 눈을 흘기고 교만하게 군다”고 답했다. 드디어 40일째가 되자 기성자가 말했다. “이제는 다른 닭이 소리를 지르고 위협해도 나무로 만든 ‘목계’(木鷄)처럼 동요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납니다.” <장자> 달생편에 나오는 목계 이야기다. 

 

고사에서 말하는 최고의 싸움닭은 자신의 감정을 자제할 줄 알고, 상대방에게 날카로움이나 교만함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이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닌 닭이라고 하였다. 이런 덕목과 덕성을 갖춘 사람을 목계지덕(木鷄之德)을 지녔다고 말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79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을 때 부친인 이병철 회장이 아들에게 선물한 것이 목계였다고 한다. 부친은 아들을 집무실로 부르더니 붓을 들어 ‘경청’(傾聽)이라는 휘호를 써주고 집무실 벽에 걸린 목계 그림을 선물하면서, 목계처럼 주위의 어떤 칭찬이나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지녀야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당부를 하였다고 한다. 이 회장은 말이 어눌하였다. 그것은 CEO로서 흠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부친이 물려준 경청과 목계 정신을 통해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었다. 목계처럼 교만을 버리고 상대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세계 이류에 머물던 삼성을 일류로 끌어올린 이 회장의 경영 비결은 바로 목계지덕이었다. 

우리 정치판의 ​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대결 구도는 ‘닭싸움’을 넘어 ‘치킨게임’처럼 가고 있어 국민을 몹시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런 때 목계지덕(木鷄之德)을 갖춘 정치인이 등장하면 분명 국민들에게 생기와 환희, 그리고 희망을 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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