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 반전(反轉)

산청시대 2022-12-15 (목) 10:02 1년전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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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편집위원 / 법학박사, 전 진주경찰서징

 

사마천의 <사기>(史記) ‘외척 세가’에 나오는 두희 황후 이야기가 있다. 두희는 태황태후라는 황실의 지존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었던 한 무제가 가장 무서워하던 할머니이기도 하다. 그녀는 조나라 땅인 청하군의 양갓집 딸로 태어나 일찍이 양친을 여의고 형제들과도 생이별하는 등 고생을 많이 겪었다. ​한 고조 유방의 후궁이 되어 여태후의 시중을 들다가  기원전 195년 유방이 죽자 유방의 그림자 한 번 밟아보지 못한 채 궁 밖으로 쫓겨나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여태후는 제후 왕들에게 유방의 후궁들을 나누어주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두 씨는 담당 환관에게 고향 땅과 가까운 조나라로 가는 명단에 자신을 넣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담당 환관이 그녀의 부탁을 까맣게 잊고는 대(代)나라로 배정해 버렸다. 당시 대 나라의 왕은 고조 유방의 넷째 아들 ‘유항’이었다. ​두 씨를 본 대왕은 그녀에게 반했고,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어둡고 고독했던 두 씨의 신세가 확 달라진 것이었다.

 

이 무렵 중앙 정부에 커다란 변고가 생겼다. ​여태후가 죽고 여 씨 일족이 일망타진됨으로써 황제 자리가 비게 된 것이었다. 대신들은 숙의 끝에 인자한 성품의 ‘유항’을 황제로 옹립했다. ​이가 바로 서한의 ​3대 황제 ‘문제’다. 대왕이 황제로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왕후가 낳은 하나 남은 아들마저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이제 황제의 자식은 두 씨가 낳은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전부였다. ​‘문제’는 두 씨의 큰아들 ‘유계’를 태자로 세웠고 이어 두 씨가 황후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마지못해 왔던 대 나라에서 뜻밖에 대왕의 총애를 얻어 자식을 셋이나 낳고, 지존인 황후에 올랐다는 인생 역전의 이야기다.

 

중국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다. 이에 이웃 주민들이 위로의 말을 전하자 노인은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하며 태연자약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도망쳤던 말이 암말 한 필과 함께 돌아왔다. 주민들은 “노인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하며 축하했다. 그러나 노인은 “이게 화가 될지 누가 압니까?”하며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하여 그만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다시 위로하자 노인은 역시 “이게 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 하며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북방 오랑캐가 침략해 왔다. 나라에서는 징집령을 내려 젊은이들이 모두 전장에 나가야 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까닭에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이로부터 새옹지마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고 한다. 새옹지마는 인생 반전(反轉)의 아이콘이다. 인간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눈앞에 벌어지는 결과만으로 단정하지 말고 너무 연연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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