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석 사랑채] 주례

산청시대 2022-12-28 (수) 11:02 1년전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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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조 편집위원 / 전 농협중앙회 감사실장 

 

주례와 나는 인연이 별로다. 내가 주례를 선 것은 평생에 단 한 차례뿐이었다. 그것도 현직 시절이 아닌 은퇴 후의 일이다. 주례는 보통 신랑 측에서 주선한다. 신랑의 은사님이나 존경하는 지인, 예식장의 신부님이나 목사님, 스님들이 주로 담당한다.

 

현직 시절 어느 날, 직장 후배가 나에게 주례 부탁을 하였다. 그래서 주례란 무엇인가를 알아보니 주례는 아무나 서는 게 아니더라. 한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그 자녀들이 장성하고 결혼시킨 이후에 서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였다. 그래야 결혼하는 사람들도 주례처럼 행복하기 때문이겠다.

 

당시 딸아이가 결혼 전이기도 하지만 내가 과연 주례라는 것을 설 자격이 있는가도 의문이었다. 그래서 그 후배의 주례 부탁을 거절했다. 그 후 내가 은퇴하고 쉬고 있는데 또 후배 한 친구가 주례 부탁이 오더라. 그때는 나도 막내딸 결혼시킨 이후이기도 하고 사실 심심(?)하기도 하여 주례를 서게 되었다.

 

주례를 승낙하고 다시 주례를 생각해보았다. 주례사를 어떻게 써야 할까를, 고민 끝에 위의 시를 인용하기로 하였다. 결혼은 남남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거사다. 처녀나 총각 때는 서로 살아온 과정이 다 다르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면 모든 것들을, 서로 맞추어 가면서 사는 것이다.

 

함민복의  ‘부부’라는 시가 있다. 긴 상이 있다. 이때의 상은 밥상을 말한다. 혼자서도 들 수 있는 작은 상이라면 무슨 걱정이랴. 그러나 이 상은 작은 상이 아니다. 혼자서는 들 수 없는 큰 상이더라. 그러니 둘이서 들어야 한다. 둘이서 들려면 서로 보조를 맞춰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어떤 보조? 사는 게 어디 혼자서 사는 것이더냐? 사는 것은 서로 사는 것이더라. 사람 인자가 무엇이더냐. 사람(人)은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 형상이더라. 잠시 허리를 펴거나 높낮이를 조절할 때도 혼자서 자기 마음대로는 안된다.

 

더구나 다 와서 상을 내려놓을 때도 혼자 먼저 내리면 안 된다. 언제나 같이 올리고 내려야 한다. 그래야 균형이 맞고 상이 엎어지지 않는 것은 정한 이치다. 그것이 부부간의 사는 모습이리라.

결혼식 당일 새벽에 일어나서 목욕하고 예식장으로 향했다. 주례를 무사히 마치고 점심 대접 잘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내가 은퇴하고 한참 후인 2012년 6월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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