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 상춘곡

산청시대 2024-04-24 (수) 23:04 1개월전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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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편집위원 / 법학박사, 전 진주경찰서장

엊그제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돌아오니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석양 속에 피어있고,
푸른 버드나무와 향기로운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구나!

아침에는 산에서 나물을 캐고, 저녁에는 낚시하세.
이제 막 익은 술을 칡 배로 만든 두건으로 걸러놓고,
꽃나무 가지를 꺾어, 수를 세어 가며 먹으리라.

화창한 봄바람이 문득 불어 푸른 물을 건너오니,
맑은 향기는 잔에 스미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술동이가 비었거든 나에게 말하여라.
아이에게 술집에 술이 있는지 물어.
어른은 막대 짚고, 아이는 술동이를 메고,
시를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가 시냇가에 혼자 앉아
고운 모래 맑은 물에 잔을 씻어 부어 들고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 떠 오는 것이 복숭아꽃이로구나
무릉도원이 가깝도다, 저 들이 그곳인 것인고? 

소나무 사이로 난 좁은 길에 진달래꽃을 붙잡아 들고
산봉우리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보니
수많은 마을이 곳곳에 벌여져 있네.
안개와 노을 빛나는 햇살은 수놓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고
엊그제 검은 들판이 봄빛이 넘치누나. 

조선 전기에 정극인이 지은 가사 ‘상춘곡’(賞春曲)의 일부이다. 작자가 자연에 귀의하여 봄을 완상(玩賞)하고 안빈낙도를 즐기는 노래이다. 

상춘이란 봄을 즐긴다는 말이다. 
봄을 즐긴다는 말은 곧 
봄꽃을 즐긴다는 말로 직결된다. 
꽃은 사람에게 긍정적 감정을 유발하며 
스트레스 감소와 행복감 증진에 
기여하고 위로와 기쁨을 준다고 한다.

상춘(賞春)이란 말은 봄을 즐긴다는 말이다. 봄을 즐긴다는 말은 곧 봄꽃을 즐긴다는 말로 직결된다. 600년 전, 그때도 꽃놀이 꽃구경이 성행했던 모양이다. 꽃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며, 스트레스 감소와 행복감 증진에 기여하고 위로와 기쁨을 준다고 한다. 

2012년 일본 치바대학에서 사람이 꽃을 봤을 때 생리적 변화를 연구했는데, 교감신경 활동이 25% 저하된 반면 부교감신경 활동이 29% 상승했다고 한다. 이는 혼란, 피로, 긴장, 불안, 우울 등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안정적인 심리상태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불쾌한 영상을 일정 시간 보여준 다음, 꽃, 파란 하늘, 의자 등의 영상을 각각 여러 차례 보게 하고 생체 변화를 조사해 보니, 파란 하늘이나 의자를 봤을 때보다 꽃 영상을 봤을 때의 혈압이 3.4% 감소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불쾌한 영상을 4분간 보여준 뒤, 꽃 영상을 8분간 보여주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21% 감소하는 등, 공포나 혐오감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사람은 꽃을 보면 기쁨, 환희, 즐거움을 느끼면서 옥시토신 같은 행복 호르몬의 분비되고, T면역세포가 활성화되는 등 좋은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올해는 봄의 절기에 들어섰지만, 사흘 들이 비가 내려 불사춘을 실감케 하더니, 어느새 여기저기 봄꽃이 순식간에 피어나면서 산천이 꽃 치장으로 바쁜 형국이다. 매화가 피었는가 했더니 개나리가 피어나고, 산수유꽃에 이어 봄꽃의 대표선수 격인 벚꽃이 방창했다. 벚꽃이 피면 세상은 꽃 무더기 속으로 들어간 듯 온통 꽃 천지가 된다. 

비가 내려 날씨는 좀 얄궂지만 후배와 함께 꽃 드라이브를 하기로 하고, 진양호 일주도로를 둘러 산청 중산리 가는 길을 잡았다. 어젯밤부터 비가 내려 호수에 물이 그득하고, 호숫가에 늘어선 꽃들이 물기를 머금은 채 희뿌연 한 광채를 뿜어내며 으스스 떨고 있다.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아 꽃잎들은 온전한 듯하다. 차는 호반을 돌아 중산리 길로 접어든다. 시천(矢川)의 급한 물은 여전히 바쁘고, 양안의 산허리에는 야생 벚꽃들이 뭉실뭉실 꽃구름을 피워내고 있다. 

萬里靑天(만리청천)
雲起雨來(운기우래)
空山無人(공산무인)
水流花開(수류화개) 

넓고 푸른 하늘에
구름이 일어나니 비 오네
빈 산에 인적 없고
물 흐르고 꽃이 피네 

송나라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의 ‘수류화개’(水流花開)의 시 구절이다. 담백하고 아를다운 풍광에 대한 정회(情懷)는 옛사람이나 현세를 사는 사람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춘색고금동(春色古今同)이란 말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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