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 빗줄기

산청시대 2024-05-29 (수) 03:52 22일전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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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편집위원 / 법학박사, 전 진주경찰서장

올해 겨울과 봄은 여느 해 보다 비가 많이 내렸다. 별밭재 옆의 비탈진 도랑은 비가 내리지 않는 겨울이나 봄이면 허전한 것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올해는 겨울과 봄 내내 그침 없이 물이 흐른다. 

송나라 소옹은 ‘춘우’(春雨)라는 시에서 봄비를 세여사(細如絲), 가는 실 같다고 하고, 고려말 정몽주는 ‘춘흥’(春興)이라는 시에서 ‘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이라고 읊어 ‘봄비는 가늘어 맺히지를 못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춘야희우’(春夜喜雨)라는 시에서 봄비를 ‘수풍잠입야’(隨風潛入夜)라 하여, ‘밤에 바람 따라 슬며시 들어온다’고 했다. 이렇듯 봄비를 ‘세여사’, ‘세부적’이라 표현하여 빗줄기의 세력이 미미하면서 가늘고 부드럽게 은근슬쩍 내린다는 것이 시인들의 통념인 듯하다. 

이런 빗줄기에 어울리는 노래가 있다. ‘더 캐스케이즈’의 노래 ‘Rhythm Of The Rain’이다. 이 노래는 빗줄기에 감정이입의 방식으로 사랑의 아픔을 표현한 곡이다. 가사는 비 내리는 날의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실연의 아픔을 담고 있다. 멜로디는 감미로운 보컬과 함께 빗줄기를 연상시키는 리듬이 앙상블을 이룬다. 가사는 실연의 쓰린 상처를 내용으로 하면서도 리듬은 빗방울이 튕기는 듯이 상큼하고 경쾌하다. 거기다가 보컬은 감미롭다는 느낌을 넘어 달콤하다. 

또, 여기에 버금가는 노래가 한 곡 더 있다. 학창 시절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 우산도 없이 머리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빈손으로 받치며 보도를 뛰고 있을 때, 음향기를 팔던 소리사 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B.J. Thomas의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이다. 이 노래는 1969년에 상영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사운드트랙으로 처음 발표된 곡이다. 머리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고난과 역경으로 비유면서 언젠가 비가 그치고 태양이 비칠 날을 기다리는 희망의 노래이다. 가사에 표현된 비의 암울한 이미지와는 달리 경쾌한 멜로디는 떨어지는 빗줄기의 리듬을 생생하게 살리고 있다. 

두 노래 다 ‘실연의 아픔’이나 ‘역경’의 슬픔을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역설(逆說)로 명랑하고 경쾌하게 노래한다. 슬픈 가사의 노래를 신나게 부르는 것이다. 첩첩산중 별밭재 초막에서 비 내리는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고, 빗줄기가 땅에 떨어지며 만드는 작은 파문을 본다. 빗소리는 마치 태고의 음악처럼 귓전을 울리며 비밀을 털어놓을 듯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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