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량’정신 살아 숨 쉬는 생비량인의 긍지

산청시대 2017-07-10 (월) 21:14 6년전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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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수 / 재부산청군향우회 고문

 

90세 넘는 인생을 살다보니 ‘사람은 인연으로 만나 서로 대화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비량’정신이 살아 숨 쉬는 생비량을 고향으로 태어난 인연에 그지없는 긍지와 보람을 느끼고 산다.

신라로 추정되는 1000년 전 옛날 우리 고장 법평 땅(지금의 법평리)에 ‘비량’이라는 스님이 절을 지어 살았었다. 주민들에게 항상 ‘베풀면서 살자’는 것을 포교의 목표로 삼아 법문을 잘 하였으므로 신도들이 많았었다. 세월이 흘러 연로하신 스님께서 노환으로 누우시게 되매, 신도들이 모두 모여 “우리는 지금까지 모두가 비량스님께 의지하고 살았는데, 스님께서 돌아가시면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가겠습니까”하고 통곡하였다.

그러나 결국 스님께서는 입적하셨으니 주민들은 그때부터 지혜를 모았다. ‘스님께서는 비록 돌아가셨지만, 그 고귀한 가르침을  주신 정신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라는 믿음과 염원을 담아 앞으로 이곳 지명을 스님의 이름 ‘比良’자 앞에 ‘生(살아날 생)’자를 붙여 ‘生比良’이라 부르자고 결의를 함으로써 그 후부터 지명이 계속 ‘생비량’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전설은 줄곧 1000년 가까이 구전으로 내 고장에 흘러내려온 것이니, 이것이 곧 ‘생비량의 유래’가 된 것이다.

1945년 8?15 해방을 맞았을 때, 면민들 ‘생비량 유래비’를 세우자는 논의가 강렬히 일어났다. 1999년에 접어들면서 당시 생비량청년회에서 주동하여 생비량 지역 유지들과 부산, 서울 등 향우회와 손을 잡아 ‘생비량 유래비 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리하여 면민과 향우들이 자진성금 4,300만원을 모금하여 2000년 5월 5일을 기해 유래비 제막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건립 당일 온 면민은 물론, 산청군민과 다수 내빈이 생비량 유사 이래 최대의 축하 인파가 모인 날로 기록되었다.

이날은 그야말로 ‘비량’스님께서 주민들 앞에 환생하시어 현신하신 뜻 깊은 날이었다. 생비량인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로서 우뚝 선 것이니, 유래비는 그냥 돌이 아니라, 생비량의 상징이요, 수호신으로 우뚝 선 것이며, 전 생비량인의 오랜 숙원사업이 성취된 커다란 경사였다. 비량스님은 ‘베풀면서 살라’고 하시며 덕을 쌓아 교화를 하셨으므로, 주민들로부터 ‘도승’으로 숭앙 받았으며, ‘1000년 전설-생비량 유래’로까지 굳어지게 됨으로써 현대생활에서의 봉사정신을 가르쳐준 셈이었다.

나는 이처럼 비량스님의 봉사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고장에서 인연을 맺고 태어난 것을 한없이 감사하고 행복으로 생각하며 무한한 긍지로 여기고 살아간다. 나는 해마다 생비량면 발전협의회에서 제정해 놓은 5월의 ‘생비량 유래비 축제일’에는 꼭 향리를 방문, 비석 앞에 서서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고 감사의 념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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