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세상을 일깨우다(23) 두류산 첩첩 골짜기로 들어가는 입덕문(入德門)

산청시대 2022-03-16 (수) 00:49 2년전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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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덕문은 덕산德山으로 들어가는 문門이다. 또한 덕德으로 들어가는 문이오, 덕인德人이 사는 마을로 들어가는 동천洞天이다. 옛날 걷거나 말을 타고 다니던 시절의 입덕문은 강과 산 사이 벼랑에 길을 내어, 겨우 말 한 필이 다닐 수 있었던 좁은 길이 나 있었다 한다. 이 길로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을까?
남명선생은 여러 번의 답사 끝에 입덕문을 거쳐 사륜동絲綸洞에 거처를 정했다. 왜 그랬을까? 전국에 명성이 나 있어서 지난번에 말한 부운사浮雲事(부귀공명의 일)를 추구하면 안락한 일생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입덕문은 덕산동천으로 들어가는 문이자, ‘두류만학문’(頭流萬壑門)<진양지> 두류산 첩첩 골짜기로 들어가는 문이다.
<진양지> 산천조山川條를 보면 ‘남추강南秋江(남효온, 1454~1492) <유산록>에 ‘덕천 벼리를 따라 위로 올라가며 아래로 긴 시내를 바라보니, 시내 양쪽 언덕이 가을철 협곡으로 물들어 산은 비단으로 거울 속에 수를 놓아, 고기가 나무 위에서 놀고, 새가 냇물 속에서 나르고 있는 것 같다.’라고 하였다.’고 했다.
‘영남에는 삼산三山이 있으니, 옥산玉山은 경주부에 있고 도산陶山은 예안현에 있으며 덕산德山은 진주 경내에 있다. 삼산이 교남嶠南(영남)에서 이름을 떨친 것은 회재와 퇴도, 그리고 남명 등 세 선생이 각기 한 구역을 점유하여 그 승경勝景이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 옥산에 세 번 들어갔고, 도산에 두 번 들어갔지만 덕산에는 가보지 못했다. 덕산은 두류산 가운데 있는 것으로 세상에서 이른바 ‘삼한 밖의 방장方丈’이다.’(정우락, <산의 품으로 기른 정대한 하늘>)

덕산은 세상에서 이른바 ‘삼한 밖의 방장方丈’
교와 성섭(僑窩 成燮, 1718~1788)이 처음으로 덕산을 찾으면서 지은 <기초입덕산답인문>記初入德山答人問(덕산에 처음 들어감을 어떤 사람이 물어서 답한 기록)의 첫머리이다. 성섭은 <춘향전>에 나오는 이 도령의 실제 인물이라고 알려진 계서 성이성(溪西 成以性, 1595~1664)의 현손玄孫이며, 홍문관 교리와 암행어사를 지낸 낙애 성기인(洛厓 成起寅, 1674~1737)의 아들이다. 문학으로 이름이 났다.
‘기축(1769)년 3월에 나는 바다와 산을 유람하게 되었는데, 기약하지 않은 동행자 너덧 명이 말고삐를 나란히 하여 촉석루에 올라 용사龍蛇(임진 계사의 전쟁)의 전쟁에 대하여 강개한 느낌을 가졌다. 그리고 신발을 고쳐 매고 몇 개의 고개를 넘어 덕천德川을 건너서 입덕문에 도달했다. 석벽 위를 보니 붉은색으로 된 세 글자가 크게 씌어 있었는데, 곧 첨지僉知 모정 배대유(慕亭 裵大維, 1563~1632)의 글씨였다. 기이한 바위가 깎아지르게 서 있고 소나무와 회나무가 짙은 그늘을 길에 드리우고 있었다. 말에서 내려 몇 발자국을 걸으니 문득 맑은 바람이 우리에게 선뜻 불어옴을 느꼈다.’<전게서>

‘입덕문’과 함께 새겨진 각자 ‘탁영대’와 ‘덕암’
‘입덕문’ 일대 각자는 세 곳이 있다. 바로 이 ‘입덕문’과 ‘탁영대’濯纓臺, ‘덕암’德巖이다.
‘입덕문’은 처음에는 도구 이제신(陶丘 李濟臣1510~1582)이 쓴 것<진양지>을 다시 모정 배대유가 썼다고 한다. ‘덕암’은 덕암 조용완(德巖 曺龍玩,1763~1832)이 새긴 것일 것이고, 탁영대는 누가 새겼는지 알 수 없다.
‘입덕문이 있는 덕천德川 좌우는, 왼쪽에 두방산이 뻗어내리고 오른쪽에 수양산이 뻗어내려 길게 협곡을 이루었는데, 이곳을 ‘수양검음’(首陽黔陰)이라 한다.<진양지> ‘수양’은 수양산에서 따온 것이고, ‘검음’은 ‘검고 그늘지다.’는 뜻이다.’(최석기, <남명과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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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대                                                                 덕암 각자

‘물이 깨끗하여 갓끈을 씻을만하다’는 탁영대
‘냇가의 벼랑 쪽으로 우뚝한 바위가 있는데 그 윗부분에 ‘탁영대’라 새겨져 있다. ‘탁영’이라는 말은 ‘갓끈을 씻는다’는 뜻으로, 중국 고대의 민요 ‘창랑가’滄浪歌에 나오는 말이다. ‘창랑’은 강물의 이름으로 <맹자> 이루상離婁上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맹자가 말씀하시기를 ‘…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고 하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얘들아, 잘 들어보아라. 물이 맑으면 이에 갓끈을 씻고, 물이 탁하면 이에 발을 씻는다고 하니, 물이 그것을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아이들이 부르는 창랑가를 듣고서, 공자는 남을 탓하기보다는 물의 입장이 되어 ‘스스로 그것을 취한다’(자취지自取之)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즉 ‘탁영대’라 이름한 것은 ‘물이 깨끗하여 갓끈을 씻을만하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그 물이 흘러 내려오는 상류의 깨끗함을 말한다. ‘입덕문’이 덕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듯이, ‘탁영대’도 그 위에 한 점 티끌이 없는 맑은 물이 흘러 내리는 근원이 있음을 상징한다. 탁영대 위쪽에는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원두源頭가 있음을 암시하니, 원두는 바로 도를 말한다.’(최석기, <남명과 지리산>)

나 홀로 탁영대에 올라 졸시拙詩를 읊는다.

탁영대에 올라

너무 멀어 천왕봉은 보이지 않는다.
저 맑은 물에, 큰선비들
덕산으로 들어가다 갓끈을 씻었다.
서래방장최초곡(西來方丈最初曲)
서쪽 방장산으로 가는 첫째 구비,
이식명옹강반심(已識冥翁强半心)
남명선생의 마음 이미 반쯤은 알겠네.

면우는 여기서 많은 시를 남겼다
갑술년 정월 초이렛날
1.167자의 입덕문부入德門賦를 지었다.

구곡봉전덕유촌(九曲峰前德有村)
구곡봉 아래 덕인이 살던 마을이 있는데,
천류동방정개문(川流東放正開門)
시냇물 동으로 흘러 정면에 문을 열었네.

문득 먼 하늘에서 푸른 학이 날아온다,
겸재는 상류로 올라가 원두를 찾으라 했지.
냇물은 곤곤滾滾히 덕천벼리(德川遷덕천천) 지나
먼 세상을 향해 흐른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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