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인의 문화 기행(21) 소룡산 전설 따라 가마실 들어가다

산청시대 2022-05-11 (수) 00:50 1년전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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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휴에서 바라본 소룡산(좌)과 바랑산

오부면은 면적 35㎢에 600세대, 인구 1,000여 명으로 산청군 11개 읍면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다. 1914년 지방행정제도 개편에 따라 이전에 분리되어 있던 오곡면(梧谷面)과 부곡면(釜谷面)을 통합하며 오부면이 되었다. 선들재 기준으로 안쪽은 부곡, 바깥쪽이 오곡이다. 부곡은 온천으로 유명한 창녕의 부곡과 한자는 같지만, 온천 때문에 지어진 명칭이 아니라 지형이 사방 산으로 둘러싸여 움푹한 모양이 마치 가마솥 안과 같은 형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곡 안에는 오전리(오전, 신기, 내평), 중촌리(중촌, 오휴), 왕촌리(왕촌, 신촌), 대현리(대현) 등 8개 마을이 있다. 70년대 오부초등학교 전교생은 700여 명에 달했으나, 지금은 겨우 30여 명에 불과하다.

8개 마을, 600세대, 1천명 살고 있는 시골

지방도 1026호선을 따라 오부면사무소에서 대현마을까지 10km 구간은 벚꽃 길이다. 중간에 있는 고갯마루가 선들재다. 옛날 선돌이 서 있어서 선돌재라고 했다는데 지금은 선들재라고 부른다. 지금의 도로 위쪽 경사면 끝에 예전의 그 선돌이 서 있다. 옛날에 선돌은 신앙의 대상물이기도 하지만 경계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선돌재가 선들재로 불리게 되었는지에 관해 설명한 자료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걸어서 고개를 넘어 다녔던 시절 땀을 뻘뻘 흘리고 이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어디선가 선들선들 바람이 불어와서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 추정해본다.
고갯마루 경계에 선돌이 서 있는 선들재

산행은 오휴마을을 지나서부터 시작된다. 산청군에서 ‘임진왜란 역사체험길’이란 이름을 붙이고 이정표와 등산로 정비도 잘해놨다. 소룡산(巢龍山, 해발 760.9m)은 산청군 오부면과 거창군 신원면의 경계에 솟아 있는 작은 봉우리로 천지가 처음 열릴 때 용의 보금자리여서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날아가던 까마귀 떼가 잠시 쉬었던 곳은 오휴(烏休)이다. 그래서 가마실도 까마구실 또는 오실이며, 뒤편 거창 쪽에도 용이 잠자던 곳인 소룡마을과 용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누워서 꿈틀거렸던 와룡(臥龍)마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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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들재의 선돌


용의 보금자리‥용과 관련한 지명 많아

등산로 입구에서 680m 지점에 홍굴(洪窟)이 있다. <오촌 선생 문집>(梧村先生文集) 서문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금서면 신풍마을에 살던 오촌 선생이 부모님을 이곳에 모셔다 놓고 난을 피했다는 기록이 있다. 오촌 홍성해(洪成海, 1578-1646)는 임진왜란 때 수백 명의 향병(鄕兵)을 이끌고 고을을 지킨 의병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입구가 무너져 내려 굴의 흔적을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다. 다만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명주 실타래 3개를 풀어 넣어도 닿지 않았다 할 정도로 깊은 굴이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향병 이끌고 고을 지킨 오촌

홍굴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110m 올라가면 남쪽으로 왕산과 필봉산, 웅석봉, 멀리 지리산 천왕봉까지 조망할 수 있는 망바위 전망대이다. 다시 300m 가면 이번에는 나무계단이 끝나는 지점 우측으로는 거대한 암벽이 보이고 강굴 안내판이 서 있다. 강굴(姜窟)은 진양에 살던 강언연(姜彦璉)공이 임진왜란 때 부모님을 모시고 피난했던 동굴로 정남향으로 50~60명 정도가 들어갈 정도로 내부가 넓고 바위 벽면을 따라 석간수가 흘러 피난처로는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굴 입구 우측 벽면에는 ‘진양강씨세수’(晉陽姜氏世守) 여섯 글자를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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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굴


강굴을 지나면 곧 무제봉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그런데 봉우리라고 하기에는 약간 부족하지만, 안내판의 설명에 의하면 500여년 전부터 이 지역에 가뭄이 심할 때 여기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고 한다. 소룡산 정상에는 특이하게 정자가 있어, 땀 흘리고 올라온 등산객에게 휴식처로서는 그만이다. 황매산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남쪽으로는 아래 전망대에서 봤던 풍경이 훨씬 더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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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이덤                                        작은바위바늘

망바위, 강굴, 무제봉으로 이어진 소룡산

소룡산 정상에서 서쪽으로는 지리산 마고 할미가 메고 다녔던 바랑이 산이 되었다는 바랑산(796.4m)이 있으며, 이 바랑에 넣고 다니던 바위 송곳이 떨어진 것이 새이덤이다.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암벽이 바위 바늘을 연상시키는데, 새이덤은 마고 할미가 옷을 기울 때 사용한 것이다. 이 새이덤이 큰 바늘이라면 이정표는 없지만, 소룡산 정상 조금 못 미쳐 다소 평평한 지점에서 왼쪽 산 아래에 솟아 있는 바위는 작은 바위 바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이덤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옷을 꿰매는 용도로는 더 적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룡산 산행은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곳곳에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어 오히려 호젓한 산행을 선호하는 등산객들에게는 좋은 산행지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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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룡산에서 바라본 조망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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