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산청 학자들

산청시대 2022-07-25 (월) 23:13 1년전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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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우의 이동서당

그로부터 약 100년 후 학문에 목마른 강우의 선비들은 석학을 찾아 남노南老(남인 노론)를 가리지 않고 찾아 배워서,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18~19세기에 나타나게 된다. 성주의 한주 이진상(1818~1886)의 문하에 ‘한주 학단’이 형성되고, 성호학통星湖學統(성호 이익 1681~1763을 계승한 학통)을 계승한 경기도 포천 출신의 성재 허전(1797~1886)이 김해 부사로 내려오자 대거 그의 문하로 나아가 ‘성재 학단’이 형성되었다.

한주 학단·성재 학단·노사 학단 탄생

한편 노론계 학자들은 장성으로 노사 기정진(1798~1876)의 문하에서 ‘노사 학단’이 되었다. 이 외에도 퇴계 학맥, 기호 학맥, 등에 속한 다양한 성향의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린 남명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당색이나 학맥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상호 교유하였다. 종래의 학통을 고수하는 학자도 있었지만 서로 융화하고 통섭하는 특질이 있었다. 이때의 학자들이 진주 옥종 합천 또는 경남 전역에 분포되어 있지만, 특히 우리 군의 단성 향교 관할 지역(특히 단성 신안 신등)에 집중적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이때의 학자들을 간추려 소개한다.

○ 남사 신안의 성주星州 이씨李氏
이우빈(李佑贇, 1792~1855) 자 우이禹爾 호 월포月浦 남고 이지용 문인
이도묵(李道默, 1843~1916) 치유致維 남천南川 성재 문인
이도추(李道樞, 1847~1921) 경유擎維 월연月淵 성재 문인
이택환(李宅煥, 1854~1924) 형락亨洛 회산晦山 면암 문인
이호근(李鎬根, 1859~1902) 회주晦周 모당某堂 성재 문인
이도복(李道復, 1862~1938) 양래陽來 후산厚山 연재 문인

○ 법물法勿의 상산商山 김씨金氏
김인섭(金麟燮, 1827~1903) 성부聖夫 단계端溪 정재 성재 문인
김진호(金鎭祜, 1845~1903) 치수致受 물천勿川 성재 한주 문인
김기요(金基堯, 1854~1933) 군필君弼 소당小塘 단계 문인
김대순(金大洵, 1872~1907) 양직養直 여재餘齋 면우 문인
김재식(金在植, 1873~1940) 중연仲衍 물계勿溪 물천 문인
김영시(金永蓍, 1875~1852) 서구瑞九 평곡平谷 물천 문인
김승주(金昇柱, 1885~1961) 영수永遂 회천晦川 물천 문인
김상준(金相竣, 1894~1971) 성흠聖欽 남파南坡 물천 문인

○ 원당元堂 입석立石 안분당安分堂의 후손들
권헌정(權憲貞, 1818~1876) 학로學老 둔와遯窩 원당 후
권헌기(權憲璣, 1835~1893) 여순汝舜 석범石帆 만성 문인
권재규(權在奎, 1835~1893) 남거南擧 직암直菴 성재 문인
권상찬(權相纘, 1857~1905) 경칠慶七 우석于石 사미 문인
권태정(權泰珽, 1879~1929) 경선慶善 성재惺齋 우석 자

○ 丹城 江樓 權運의 후손들
권상적(權相?, 1822~1900) 율원聿元 해려海閭 성재 문인
권상빈(權相彬, 1853~1889) 주약周若 천후川後
권운환(權雲煥, 1853~1918) 순경舜卿 명호明湖 노사 문인
권재규(權載奎, 1870~1952) 군오君吾 송산松山 노백 문인
권도용(權道溶, 1877~1963) 호중浩仲 추범秋帆
권용현(權龍鉉, 1899~1987) 문견文見 추연秋淵 간재 문인
권창현(權昌鉉, 1900~1976) 회경晦卿 심재心齋 송산 자

○ 기타 성재 허전 문인들
김기주(金基周, 1844~1882) 성규聖規 매하梅下 상산인 법물 거주 한주 양문
이상규(李祥奎, 1846~1922) 명뢰明賚 혜산惠山 함안인 단성(묵곡?)거주
조원순(曺垣淳, 1850~1903) 형칠衡七 복암復菴 창녕인 대포 거주 한주 양문
하용제(河龍濟, 1854~1919) 은거殷巨 약헌約軒 진양인 여사 거주 면우 양문
이호근(李鎬根, 1859~1902) 회주晦周 모당某堂 성주인 남사 거주

○ 기타 한주 이진상 문인들
곽종석(郭鍾錫, 1846~1919) 명원鳴遠 면우?宇 현풍인 사월 거주
박규호(朴圭浩, 1850~1930) 찬여瓚汝 사촌沙村 밀양인 사월 거주

○ 기타 면우 문인
하봉수(河鳳壽, 1867~1939) 채오采五 백촌栢村 진양인 백곡 거주

○ 기타
하겸락(河兼洛, 1825~1904) 우석禹碩 사헌思軒 진양인 남사 월포 문인
박동혁(朴東奕, 1829~1889) 순중舜仲 병와病窩 밀양인 단성 인량 후
박상태(朴尙台, 1838~1900) 광원光遠 학산鶴山 밀양인 단계 최계남 문인
하용표(河龍杓, 1848~1021) 대견大見 월담月潭 진양인 백곡
김현옥(金顯玉, 1844~1910) 풍오豊五 산석山石 김해인 산청
조호래(趙鎬來, 1854~1920) 태경泰競 하봉霞峰 함안인 소남 성재 문인
박희정(朴熙?, 1864~1918) 옥여玉汝 정산貞山 밀성인 단성
조용상(曺庸相, 1870~1930) 이경彛卿 현재弦齋 창녕인 대포 최계남 문인
한  유(韓  愉, 1868~1911) 희녕希寗 우산愚山 청주인 백곡 월고 간재 문인
강지고(姜趾皐, 1834~1903) 양여揚汝 봉암鳳菴 진양인 단성 묵곡 산청 정곡
김종우(金宗宇, 1854~1900) 주서周胥 정재正齋 경주인 단성
이지영(李之榮, 1855~1931) 치윤致允 눌암訥菴 경주인 산청
강기팔(姜起八, 1858~1920) 문일文一 계여稽黎 진주인 정곡

위에 적은 분들보다 더 많은 학자가 있었다. 새로운 문화, 학문이 서구에서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지만, 할아버지들은 전통 학문을 지키고 공부했다. 일본 사람이 가지고 온 학문이라서 더욱 변화를 배척했을 것이다. 마을마다 갓을 쓰고 다니는 할아버지들, 집에 들면 정자관(집에서 쓰던 윗부분이 산처럼 우뚝우뚝한 관, 옛날 정자程子가 썼었던 관이라 한다.)을 쓰고 글을 읽던 할아버지들이 몇 분은 있었다. 일본 관헌이 상투를 자르려 하면 저항하던, 그리곤 산중에 숨어서 농아정聾啞亭(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사는 집)을 짓고 지조를 지켰던 할아버지, 그런 분들이 더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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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 이진상                   성재 허전                       추범 권도용                   면우 곽종석

지식 있던 후손 문집 간행‥선비 전통

그들이 쓴 기록들을 무식한 우리는 문풍지 바르고 벽지 바르고 엿 바꿔 먹었다. 글을 모아 문집을 내지도 못하고 다 잃어버렸다. 그래도 살림이 좀 넉넉했거나 지식이 있었던 후손은 문집을 간행했다. 그리고 대를 이어 선비다운 전통을 지켰다. 그들이 19세기의 학자들이다. 이분들의 말이나 글이나 생각이 바로 우리의 할아버지다. 살림이 가난했지만 문질文質이 빈빈彬彬했다. 특히 우리 지역에 훌륭한 학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우리에게 문화의 DNA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19세기의 조상을 연구하여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고 앞으로 나아갈 전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조종명 남명진흥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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