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행] 산청을 다녀와서

산청시대 2022-07-25 (월) 23:47 4개월전 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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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서원                                                             성철스님 생가

조선조 영남 유학의 양 거봉 중 한 분이라고 할 수 있는 남명 조식 선생의 고향 산청을 <산청시대> 성준제 주필의 초청으로 한강 역사문화 포럼 회원인 이훈 함경북도 도지사와 하재열 서울대 교수, 유영진 영화감독과 함께 다녀오게 되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초행길인 산청, 지리산 청정골이라는 그곳을 가기 위해 산청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3시간가량 달려 산청에 도착하니 성 주필님께서 차량을 가지고 마중 나와 계셨다. 일단 맛보기 코스라며 경호강을 끼고 있는 적벽산 피암터널 코스를 안내해주셨는데 산청 적벽은 중국 적벽에 비해 크고 웅장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무소유 삶 실천하신 성철 스님 위엄 느껴
첫 코스인 성철 스님의 생가터 겁외사로 향했다. 겁외사의 뜻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7월 초, 이른 폭염 속의 겁외사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성철스님의 사리탑과 복원한 생가, 기념관을 보며 평생 두 벌 두루마기와 고무신으로 사신 성철스님의 검소함과는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경내 곳곳의 상당한 수령을 자랑함직한 백송과 반송들을 품은 자연을 보며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신 성철 스님의 위엄이 느껴졌다.

‘니구산’과 ‘남사천’이 휘감는 마을
다음 행선지인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로 꼽히는 남사 예담촌으로 발길을 돌렸다. 예담촌은 마을 왼편으로 공자의 고향 산 이름에서 따온 ‘니구산’(尼丘山)이 있고 ‘남사천’이 마을을 휘감아 돌아 나가는 반달 모양의 형상에 돌담이 정겨운 마을이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속으로 들어온 듯, 길을 따라 남사천을 지나니 유림 독립기념관이 나온다. 유림 독립기념관은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감시를 피해 짚신을 꼬아 파리로 보낸 독립 염원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당시 면우 곽종석(1846-1919) 선생 등 전국 각지의 유림 대표 137명이 서명하여 국제사회에 대한민국 독립의 당위성을 주창한 독립청원서 ‘파리장서운동’을 기념한 2,674자에 달하는 ‘파리 장서’ 원문 동판과 한글 번역판 동판이 전시되어 있다.

전국 유림 137명이 서명한 ‘파리장서’
‘파리 장서’는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대한민국의 독립을 호소한 독립청원서로, ‘차라리 목을 함께 모아 죽음으로 나아갈지언정 맹세코 일본의 노예는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림 대표들의 굳은 의지를 담고 있음에도 일반 국민에게는 너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전국의 유림을 대표로 한 2,674자에 달하는 파리 장서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 한강 역사문화 포럼에서 ‘면우 곽종석 선생과 파리장서’의 주제발표가 있으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산청의 자연을 화폭에 담는 이호신 화백
다음 목적지로 이곳 산청에서 태어난 국악계의 큰 스승으로 알려진 기산 박헌봉(1906-1977) 선생 기념관에 들렀으나 마침 휴관일이라 일부밖에 볼 수 없었다. 이어지는 마을 순례길에서 이순신 장군께서 백의종군 길에 묵었다는 기념 사당을 지나 특별한 연고 없이 지리산이 좋아 이곳 산청에 들어와 면우 곽종석 선생의 초상화를 그리고 산청의 자연을 화폭에 담고 계신 검돌 이호신 화백을 방문했다. 이호신 화백은 마음의 드론을 타고 남사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산청의 전경을 그리셨고 산청 3매라 하는 남명매, 원정매, 정당매를 특별히 구별된 그만의 화필로 복원하였다. 또한, 10여 년 전 당시 마을 촌로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며 그분들 한 분 한 분 캐리커처로 담은 정겨운 기록화는 살아있는 산청의 인물 역사서다.

남명 조식 선생은 조선 시대 진정한 처사
다음 행선지인 덕천서원으로 향했다. 서원 입구에 위용을 뽐내며 버티고 있는 은행나무를 뒤로하고 서원에 들어서 경의당 마루에 올라 땀을 식히며 남명 선생의 일생에 대해 생각해 본다. 후세의 사가들은 남명 조식 선생을 위대한 처사라 부른다. 예로부터 왕비를 배출한 집안보다 대제학을 배출한 집안이 낫고, 대제학을 배출한 집안보다 문묘 배향자를 낳은 집안이 낫고, 문묘 배향자를 낳은 집안보다 처사(處士)를 배출한 집안이 낫다고 했는데 바로 남명 선생이 처사였다 한다. 남명 선생은 퇴계 이황과 동갑으로 당대 도학(道學)의 쌍벽이었지만, 이황 선생은 처사 지망생이었을 뿐이고 오직 남명 조식 선생만이 진정한 처사였다고 한다. 처사란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은둔하면서 학문에 정진하는 이를 지칭한다. 선생은 생전에 학문에만 열중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경상좌도에는 퇴계가 있고 우도에는 남명이 있다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 덕산에 자리 잡고 산천재(山天齋)를 지어 오직 학문과 제자 양성에만 전념하시다 72세에 세상을 떠나신다. 신념을 지킨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조선의 진정한 처사의 상징이 된 선생을 오롯이 만난 상념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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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독립기념관

동의보감촌 기 바위와 전 구형왕릉 찾아
첫날 답사를 모두 마치고 <산야초 일기>의 베스트셀러 작가 겸 지리산 건강학교 원장이신 전문희 작가와 조형예술가이신 김성수 지리산아트팜 캠퍼스 학장과 자리를 함께했다. 선비문화원 숙소 루프탑에서 저녁노을 속 지리산 천왕봉을 보며 함께 한 친교의 시간은 잊을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중산간 전망대에 올랐다. 이곳에서 바라본 지리산 줄기의 아름다움을 뒤로하고, 동의보감촌에 들러 기를 많이 받는다는 바위를 힘껏 끌어안아 기를 듬뿍 받고 금서면에 있는 김유신 장군의 증조부인 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능이라고 전해지는 능인 전 구형왕릉을 탐방했다.
이틀 동안 안내를 도맡아 주셨던 성준제 주필과 전문희 선생 덕분에 준비 없이 예기치 않게 떠났던 산청 여행은 시공간을 초월한 인생과 문화의 진한 만남으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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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바라보며

글 / 이익배 한강역사문화포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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