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세상을 일깨우다(34) 우리나라 4대 기업 창업주 정신의 모태가 된 남명
‘남명 조식은 한국의 철학자로, 그 학설은 비록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우주宇宙의 기본 구성에 있어서 중국 송유宋儒에 근원하고 있으나 형이상학에서 인생철학으로 전환되는 관점, 특히 구체적인 정치 사회에 관한 이론에 있어서는 상당히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으니 실천철학實踐哲學의 입장에서 행동을 지향하는 철학을 발한 것으로, 이것이 역행철학力行哲學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중국 송유 철학의 최대 결점은 심성心性을 공언空言하기만 하여 ‘앉아서 말하는 것’(좌이언坐而言)은 잘하나 ‘일어나 수행하는 것’(기이행起而行)은 잘 못하는 것이다. 남명의 역행철학은 송유를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으니, 이것은 동방철학東方哲學이 실천을 중시함을 의미한다. 중국 본토 철학이 한국에 전파되어 이론적 실천에서 실천적 실천으로의 전환점에 있어서는, 남명의 공헌에 비길 자가 없다.’ 오곤여 교수의 위 논문에서 ‘이론적 실천, 실천적 실천’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말하자면 이론적 바탕은 송나라 때 물 샐 틈 없이 완성되었는데, 그 실천은 하지 않고 다시 이론을 왈가왈부하고 있으니 남명 선생은 이를 개탄하고 실천적 실천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명의 교육을 늘 의병의 충혼으로만 이야기할 것인가? 지난 3월 29일 진주시 지수면 승산 마을에 ‘K 기업가 정신 센터’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진주시가 협력해서 설립했다. 진주의 기업가 정신이 남명의 실천적 실학사상에 그 연원을 찾는 것이라 한다. ‘남명 조식의 기업가 정신 가치체계’라는 도표에 ‘남명 조식의 경의사상과 허준 선생의 부자정신을 계승한 4대 창업주(◇GS 효주 허만정, ◇LG 연암 구인회, ◇삼성 호암 이병철, ◇효성 만우 조홍제)의 기업가 정신’이라 게시해 놓았는데, 나는 좀 더 남명학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실감있게 다음과 같이 이론화하여 ‘기업가 정신’을 도식화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첫째, 불찰절기지병不察切己之病(자기의 절실한 것을 살피지 않는 병)을 고치는 정신 : ‘오늘날의 폐단은 고원高遠한 것에 힘을 많이 쓰고 자신에게 절실한 것은 살피지 않는 데에 병통이 있다. 성현의 학문은 애초에 일상적으로 늘 행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만일 혹 이것을 버리고 갑자기 성명性命의 오묘한 뜻을 엿보고자 한다면, 이것은 인사人事상에서 천리天理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본성을 다하고 천리를 아는 것이 효제孝悌에 근본 하지 않겠는가, 비유하자면, 길이 두루 통하는 큰 시장에서 마음껏 노닐며 진귀한 노리개와 기이한 보배를 구경하고, 하루 종일 거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부질없이 그 값을 이야기해 봤자 끝내 자신의 물건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남명 선생 편년> 48 세(1548)조 둘째, 살활수법殺活手法(자유자재로 운용해 쓰는 방법을 익히는 것)에 능통할 것 : 남명 선생이 외손서인 동강 김우옹에게 편지하기를 “… 내가 그대에게 걱정스러운 것은 ‘하루 햇볕을 쬐이고 열흘을 춥게 하는 것’ <맹자> 고자告子 상편에 나오는 말로, 하루 학문에 나아가고 열흘을 그렇지 못함을 나타내는 말과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근본이 확립되지 않아 행동을 절제하는 데 재능이 없으며, 학문을 강구하는 데 정밀하긴 하지만 치용致用에 졸렬하여 자유자재로 운용해 쓸 수 있는 수단이 짧으니, 이점이 가장 시급히 갖추어야 할 일입니다. 일찍이 살펴보건대, 자[척도尺度]는 집집마다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하찮은 사람들까지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푼分·촌寸의 눈금도 매우 명백합니다. 그런데 이 자를 이용하여 구장복九章服 아홉 가지 무늬를 새긴 천자의 의복을 마름질하는 사람도 있고, 한 자 밖에 안되는 버선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예를 보면 남명 선생이 얼마나 실질을 강조했는지 알 수 있고, 알아도 능수능란하게 익혀야 실제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취지를 살려 활용했으면 좋겠다 싶다. 그러나 재산이 많아 명문가가 된 것만은 아니다. ‘조선 말기의 학자 월고 조성가(1824~1904)는 승산리 허씨 가문을 평가하여 ‘글을 심고 학문을 이루고 절행節行을 면려하여 3대로 큰선비가 온 道 안에 이름을 드날렸다. 그래서 진주에서 이름난 집안으로는 승산의 허 씨를 으뜸으로 친다’라고 하였다.’(허권수, 승산리 김해김씨 문중의 인물 1917, 남명학 연구)
이 마을에 허씨가 처음 입향한 것은 산청의 단계에서였다 하니 더욱 관심을 끈다. 지신정止愼亭 허준許駿(1844~1932)은 만석꾼으로 그 아들 효주 허만정(1897~1592)은 진주 일신학교를 창립하였다. 허준의 재산과 정신이 모태가 되어 오늘날 LG/GS 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 주식회사’와 ‘삼성물산’ 건립의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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