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과 ‘남명학 연구원’ 탄생

산청시대 2022-10-04 (화) 00:30 1년전 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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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비문화연구원 전경

한편 정중환 박사와 김상조 씨 등의 노력으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던 남명 선생의 유적지들이 조옥환 사장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당시 덕천서원 원장이었던 전상희 선생, 김충렬 교수, 이규호 전 문교부 장관, 문중의 조인생 씨, 당시 문화공보부 정태진 국장 등의 협조하에 문화공보부에서 국가 문화재로 승격하여 1983년 1월 23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305호’로 ▲산천재, ▲덕천서원, ▲묘소, ▲별묘, ▲여재실 등 일원이 지정되었다.

또 남명학 연구원은 1988년 10월 <남명학연구논총>南冥學硏究論叢 창간호를 발간했으며, 같은 시기에 경상대학교 개교 4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되어 이를 조옥환 사장과 조재화 한일교통 사장 등 조씨 문중의 인물들이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이 결과 <경남문화연구> 제11집을 남명학 특집호로 간행하였다.

국가 문화재 지정을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남명 선생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희박함을 느낀 조옥환 사장은 이 내용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재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문교부에 건의하여 이를 실현하게 되어 전국의 몇 군데 시범학교에서의 교육을 시행하고, 드디어 1990년부터 전국의 초등학교 ‘6-1 읽기’ 교과서 제4과(37~47쪽)에 ‘조식’ 항목을 등재하여 초등학생을 통해 전 국민이 남명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알게 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또 이정한 경상대학교 총장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남명학연구소’ 발기인대회를 거쳐, 1990년 9월에 남명학연구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공영립 교수가 초대 소장으로 취임하였다. 그 후로 최무석, 허권수, 최석기, 윤호진, 이상필, 강정화 교수 등이 역임하고 있으며, 해마다 한두 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남명학연구>南冥學硏究를 정기간행하고 있다. 그리고 <남명집>의 번역과 수많은 연구 업적물을 내고 있다.

그러한 과정 중에서 연구원 안에서는 연구원을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여야 한다는 요망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드디어 1993년 11월 20일 사단법인 설립을 위한 발기인대회를 이정한 전 경상대 총장이 발기인 대표를 맡아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하였다.
1994년 5월 13일 재무부의 승인을 받고 경남도 교육감에게 ‘사단법인 남명학 연구원’ 설립 허가를 신청하여 6월 30일 경남도 교육감으로부터 ‘허가제 17-16호’로 등록 허가를 받게 되었다.
이사장에는 권순찬 연암공업전문대학 학장, 원장에 김충렬 고려대학교 대학원장을 포함하여 법정 이사 15인으로 구성하였다. 자산은 조옥환 사장이 기부한 기본자산 1억원과 법정 이사 15인이 출연한 1,500만원으로 출발하여 7월 28일 산청등기소에 등기를 필하고, 8월 18일 진주세무서로부터 고유번호 613-82-05277을 지정 받음으로써 사단법인 설립을 위한 모든 절차를 마치게 되었다.

이어 9월 1일 김경수를 초대 사무국장으로 임명하여 사단법인으로서 업무를 추진하게 하며 한편으로는 지역유림 및 산해연원가 후손을 중심으로 평이사를 위촉하여 11월 27일 사단법인 남명학 연구원 1994년도 창립이사회를 가지고 95년도 사업계획서를 심의 의결하였다. 그 의결에 따라 이미 문화체육부에서 선정하는 95년 2월 ‘이달의 문화 인물’로 지정되어 있던 남명 선생의 기념행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2개월 이상의 준비 기간을 거쳐 95년 2월 22일 서울의 성균관에서 한국, 중국, 미국, 일본의 교수들이 참가하여 ‘남명 선생의 학문과 사상 조명’이란 주제의 ‘국제학술 대회를 개최하여 성황리에 마쳤으며, 동시에 ’찬남명선생도학‘讚南冥先生道學이란 제목의 ‘전국 유림 한시 백일장’을 개최하여 장원에 박영제를 비롯하여 39명의 수상자를 내기도 하였다.
또한 1월에 제작한 MB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남명 조식’도 4월 28일 전국에 방영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시작된 남명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30여 년의 기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오이환 교수가 정리한 <남명학 관계 기간문헌 목록>에 의하면 2011년 말까지의 기간 문헌 목록만 120쪽에 이르고, 발표된 논문만 2.000편을 헤아린다. (오이환. <남명학의 새 연구> 하. 한국 학술정보. 2012. 313~412쪽)
게다가 남명 선생 탄신 500주년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행한 2001년 이후로는 관련 기관들에서 정기적으로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논문집을 간행하고 있는 관계로 인하여 1년에 대략 50편 이상의 연구실적이 추가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명학 관련 연구실적을 정기적으로 간행하고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대표적인 단체만 해도 ▲사단법인 남명학 연구원을 비롯하여, ▲경상국립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서울대학교 재단법인 남명학회 ▲진주교육대학교 남명학교육 연구재단 등이 있다.
남명학연구소에서 1년에 4권의 논문집을 간행하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나머지 두 기관에서도 1년에 1권의 논문집을 간행하고 있다. 이 밖에 진주교육대학교 ‘남명학교육 연구재단’도 간헐적으로 성과물을 출판하고 있다.
이처럼 단기간에 한 인물에 관한 연구가 폭증하면서 이루어진 사례는 전무후무할 정도인데 이는 남명 선생의 후손인 조옥환 사장의 적극적인 후원에 의해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이미 오래전에 남명의 학문과 사상은 ‘남명학’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으며, 동양철학계에서는 한국의 대표적 사상가 10인의 범주에 포함하게 되었다. (이는 예문서원에서 기획하여 간행한 ‘한국의 사상가 10인’ 중에 남명이 포함된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말한 10인은 ▲원효, ▲의천, ▲지눌, ▲이황, ▲조식, ▲이이, ▲정재두, ▲정약용, ▲최한기, ▲최제우 등이다.)

그동안에 있었던 대표적인 기념사업을 몇 가지 열거해보면,
-김해 산해정을 중수하여 신산서원으로 복원 규모를 확대한 일,
-합천 삼가 뇌룡정 옆에 용암서원을 중건하고 낡은 뇌룡정을 조금 이전하여 중건한 일,
-덕산에 남명기념관을 신축하여 연간 10만명 이상의 관람객을 유치하고 있는 일,
-‘한국선비문화연구원’을 설립하여 남명학에 바탕을 둔 선비정신과 청렴 및 인성교육, 그리고 힐링 연수를 전국적 규모로 시행하고 있는 일 등이다.

남명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던 무렵에는 주로 남명 사상의 특징을 구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퇴계학과의 비교를 통하여 그 독창성을 찾으려 했고, 이어서 남명 사상의 다양한 영역들로 연구가 확대되었다. 그러면서 가장 중심적인 쟁점으로 부각한 것이 남명의 성리설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정치사상 및 교육사상 등이 많이 거론되었다. 물론 남명에 대한 연구는 어느 시점 이후로는 제자와 종유인 및 넓은 의미의 남명학파에 속하는 인물까지 확대되었고, 최근에는 근세의 인물들까지도 남명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거의 연구대상에 포함하면서 남명학의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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