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세상을 일깨우다(46) 산천재山天齋, 못다한 이야기

산청시대 2023-11-17 (금) 23:37 3개월전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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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재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과 한국선비문화연구원

 

기해년 4월 10일(2019.5.14) 산청 진주 일대의 소객騷客 스물댓 분이 산천재에 모였다. 이날은 유계儒契 날이다. 옛날에는 선비들이 모이면 시를 지어 고인을 추모하고 경관을 읊조리는 아름다운 풍속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현대 한글시도 그렇게 하면 안 되겠는가? 

아회雅會라고도 한다. 글을 짓고 토론을 하는 고상한 모임이라는 뜻이다. 유계는 선비 또는 유생들이 그들의 스승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이다. 이때 모여서 선생의 유덕을 계승하는 강회講會를 하기도하고 스승을 위한 채례采禮를 올리기도 한다. 

지금 산천재장은 최석기 선생이다. 이 글을 쓰고 있던 중에 최선생은 한국선비문화연구원의 부원장으로 위촉되었다. 덕천서원 원임에 이상필 선생이 위촉되어서 남명학에 권위 있는 연구자 두분을 모시게 되어 기대되는 바가 크다. 

 

산천재는 남명선생이 생전에 사성현유상(四聖賢遺像: 공자, 주렴계, 정명도, 주회암)을 그려서 모셔놓고 첨앙瞻仰했으므로 사성현에 대한 채례를 올렸으나, 지금은 폐했다. 선생이 손수 그린 유상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다, 대신 유림이 모여 추모하는 여러 행사를 한다. 오늘의 시회도 그중의 한가지다.

 

오늘의 시제는 ‘산천재아회’山天齋雅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글을 지었다.

  

山天齋雅會 산천재아회

山齋易象誨開吾산재역상회개오 산천재의 주역 괘상이 나를 깨우쳐 열어주고,

洗悟胸襟責懦儒세오흉금책나유 마음속을 씻어 깨우쳐 나약한 선비를 경책하네.

騷客風流探善境소객풍류탐선경 소객의 풍류는 좋은 경계를 탐구하고,

靑衿雅詠究眞區청금아영구진구 선비의 우아한 시는 참된 지경 궁구하네.

神明舍裏平天定신명사리평천정 신명사 안에는 천하의 다스림 정해 있고,

百揆關前大壯扶백규관전대장부 백규는 관문 앞에서 대장기를 붙드네.

收斂其心高尙訣수렴기심고상결 자기 마음을 수렴하라는 고상한 지결을,

惺惺不??歌謳성성불매면가구 늘 깨어 있고 혼미하지 않음으로서 칭송하여 노래하세.

 

산천재라는 재사齋舍 이름은 주역 대축괘大畜卦의 뜻을 취한 것이다. ‘굳세게 정진하여 나날이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남명학의 요체가 ‘신명사도’神明舍圖라는 선생의 도圖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 그 그림 속에 사람이 수양해서 지극한 선에 이르는 법과 천하 다스리는 이치가 요약되어 있다. 백규百揆가 신명사의 관문 앞에서 대장기大將旗를 받들고 있으니 조금도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고 그 고상한 지결旨訣을 늘 지켜 살아가자는 마음을 표현한 졸작이다.

신명사도는 지금 보존하고 있는데 여러 번을 배접해서 조금 너덜너덜한 것을 진주 박물관에 전문가가 와서 수리를 했다. 그 지질을 볼 때 200년 이상 된 것이라 한다.

 

산천재 앞에는 선생이 손수 심은 매화나무 한그루와 덕천서원을 건립할 때 제자들이 심었다는 백 그루 중 몇 그루 소나무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오늘도 꿋꿋이 서서 선생의 기상을 보는 듯하다.

산천재. 여러 번을 되뇌어 본다. 전국의 명소, 명현들의 유적과 산천의 아름다운 경개, 으리으리해서 압도당하는 건물의 위용을 보고 돌아와 여기 와서 서면, 그 풍겨오는 기운은 산천재를 당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늘 느낀다. 이 조그마한 삼 간의 재사 앞에 서서. 또한 지금도 수많은 답사객이 찾아와 마음속 무언가를 느끼고 간다.

산천재 마당에 서면 좌우와 전방의 산들이 읍하듯 벌여 서 있다. 신명사神明舍를 둘러싸고 있는 원곽垣廓처럼.

 

재사의 바로 앞에는 남명매가 서 있다. 마당 가에는 소나무 세 그루가 몇 년 전 까지 서 있었지만 풍상을 못 이겨 다 쓰러졌다. 오른쪽 담장 밖에 한 그루, 왼쪽 담장 밑의 길가에 두 그루는 낙낙한 장송으로 굽어 서 있다. 그 외 도로변 등에 몇 그루가 서 있다.

옛날 남명집, 학기류편, 연원록 등의 개간改刊(다시 고쳐서 간행하다)을 위한 의논과 교정 등 수많은 일 들이 거의 산천재에서 이루어졌다. 

덕천서원은 제사를 지내는 일, 선생과 수우당守愚堂을 제향하며 미리 주요 집사를 정하고 그 집사들이 재계하는 일을 처리했다면, 산천재는 선생이 생전에 사성현四聖賢의 유상을 모사해 모셔놓고 조석으로 첨경 했듯이 채례를 모시고 학문을 강하고 토론하는 장소이었던 것이다. 귀빈이 와서 숙식하며 유향을 느끼고 사숙私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산천재는 단청이 되어 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는데 출전을 못 찾고 있다가 월여 전에 덕천서원 해설사 변명섭 씨가 받은 자료를 보여주었다. 어떤 방송국에서 취재차 오신 분의 자료라 한다. 동강이 쓴 행록에 있다는 말을 듣고 즉시 찾아보았다, 나의 지식이 얕은 것을 알았다. 이런 말을 어디서 본 기억은 있는데 출전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거처하는 서실에 모두 단청을 했는데, 밝고 깨끗한 점을 취한 것이다. 이전에 내가, ‘단청은 가난한 선비에게 알맞은 것이 아닌 듯하니,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의견을 말씀드렸더니, 선생은 우스개로 ‘나는 부귀한 기상이 있으니, 자네의 청빈한 모양과는 같지 않다네.’라고 하셨다.”(소거서실所居書室 개시단확皆施丹? 개취기명정야蓋取其明淨也 우옹상문단확공비한사소의宇?嘗問丹?恐非寒士所宜 원불필여차願不必如此 선생희운先生戱云 오각유부귀기吾?有富貴氣 불사이고담모양야不似?苦淡模樣也.) (허권수. <남명 그 위대한 일생> p188. ‘남명선생행록’ 김우옹 지음)

선생의 외손서이며 제자인 동강 김우옹이 선생과 직접 문답한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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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서원 향례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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