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군 문화관광해설사 문화유적 답사 (4)

산청시대 2024-05-16 (목) 13:34 1개월전 212  

윤순백(尹順伯) 불망비(不忘碑)와 산청군 참전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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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백 불망비

 

산청읍 자신마을에서 원지로 가다보면 옛 심거 마을의 흔적이 있는 느티나무 아래 낡은 비(碑) 하나가 서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데 전면에는 도내좌우사도도반수 윤공순백불망비(道內左右社都都班首 尹公順伯不忘碑)라 적혀있으나 비의 뒷면은 군데군데 총탄자국과 마모가 심해 글씨의 해독이 어렵다. 보부상들이 윤순백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도로변인 이곳에 세운 비라고 전한다.

윤순백의 생몰 년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으나 진주의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나라의 종묘를 근심하고 고을을 잘 다스려 나라에 보국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데 공이 컸다고 한다. 단성군수와 사천군수·진보군수를 역임하였으며 남해 보리암 근처 바위에는 경상도 관찰사 이재현의 남해 보리암 순행 때 사천군수 남해 서리 자격으로 함께 수행하였다고 새겨져 있다. 사천 정동 예수리의 오인(五人)숲과 남원 운봉 관음치 등에도 기록이 있다. 

 

비는 사적이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나무·돌·쇠붙이 따위에 글을 새겨 세워놓는 건조물로 재질에 따라 목비·석비·철비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현존하는 목비는 없고, 철비는 드물고, 거의가 석비이다. 처음에 비는 묘문에 세워졌고 그 뒤 무덤가에 세워지게 되었고 후한시대에 문자가 새겨지고 비신(碑身)·비두(碑頭)·부좌(趺座) 등의 형식이 갖추어졌다.

비는 내용에 따라 탑비(塔碑)·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사적비(事蹟碑)·송덕비(頌德碑) 등이 있는데, 대개는 사건 당시 또는 그와 가까운 시기에 세워져 기록되기 때문에 역사학·문자학·서예 등 여러 분야의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된다. 또 비의 구조와 양식 등은 미술사의 자료가 되고, 비에 새겨진 입비 연·월·일은 정확한 연대를 밝혀주므로 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보부상(褓負商)은 등짐장수인 부상(負商)과 봇짐장수인 보상(褓商)을 말하는데 등짐장수인 부상은 상업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고대에도 있었다. 이들이 취급하는 상품은 주로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생활용품이었고, 하층민들이 종사하여 사회적으로 냉대를 받았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 조정의 지원을 받아 부상단(負商團)이 만들어져 서로 도우며 활동했다. 

반면 봇짐장수인 보상은 조선 후기에 나타났다. 보상은 세공품처럼 부피가 작고 값비싼 물건을 다루었다. 보상들의 조직인 보상회(褓商會)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규칙을 만들어 지나친 이익을 남기거나 속이지 않도록 단속했다. 보상들의 우두머리는 접장(接長)이라고 불렀다. 보상과 부상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

흥선대원군은 보부청(褓負廳)을 설치해 8도의 보부상단을 통합하여 스스로 전국 도반수(都班首)가 되어 전국에 8도도반수(八道都班首)를 두고서 전국 시장을 장악하여 쇄국정책을 지지하는 단체로 성장시키기도 하였다.

1883년에는 혜상공국(惠商公局: 보부상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상인조합)이라는 관청을 만들어 부상과 보상을 하나로 통합했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했다. 개항 후 청과 일본 등 외국 상인의 진출로 조선 상업이 피해를 입은 데다, 보부상의 전국적인 조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1894년에 동학 농민 운동을 진압할 때 보부상 1,000여 명이 동원되었고, 독립 협회와 만민 공동회를 탄압할 때에도 황국 협회에 소속된 보부상단을 이용했다. 보부상들은 조정에 협력한 대가로 소금이나 철, 토기, 목기 등의 상품을 독점하여 팔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보부상은 권력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특권을 누리다 보니, 새롭게 변화된 경제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개항 후 일본 상인과 청 상인들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쇠퇴하다가 일제 강점기에 대부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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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참전기념공원

 

1951년 8월 8일 빨치산들의 기습공격으로 많은 아군이 희생된 88사건이 일어난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 산 185-8번지에 국가 보훈부 지정 현충시설인 참전기념공원이 있는데, 안내판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다.

이 기념공원과 기념탑은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 그리고 88사건 등에 참전한 산청군 출신 국가유공자 1,297명은 청춘과 신명을 위해 헌신한 공훈을 후손에게 널리 알리며 그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에 대한 배움터로 삼고 또한 그들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자유와 평화 번영을 누리게 한 주인공들이었다는 자부심과 명예를 선양하고자 산청군 6·25 참전 유공자회, 베트남전, 88사건 참전 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가 2007년도 건립하였다. 

건립에는 국가보훈처 2억7,800만원과 도비 3억8,500만원, 군비1억8,200만원 등 총 8억4,500만원의 사업비와 군민들의 정성을 모아 2007년 3월 30일 건립하였다. 

중앙의 탑의 높이는 21m에 달하며 부지면적 4,036 평방미터의 호국공원을 조성하여 추모공간인 3개(6·25참전기념비, 베트남참전기념비, 88사건위령비)의 탑을 산청군참전유공자회의 선창으로 백두대간 최남단 지리산록 웅석봉을 굽어보며 청정 맑은 경호강변 새고개 언덕위에 비를 세웠다.

그리고 2017년에 조국수호의 충의정신과 애국정신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를 새로 건립하였다. 

 

성순용 / 산청군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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